올해로 발족 30주년을 맞는 국무조정실이 22일 '국무조정실 30년사'를 발간했다. 이 책은 지난 73년 행정조정실로 출범한 후 지금까지 국무조정실이 집행한 주요 국가정책, 행정쇄신 등 '행정의 역사'를 정리했다. 퇴직 공무원이 털어놓은 비사도 눈길을 끈다. 다음은 요지.정동 러시아 공관=1896년 고종이 몸을 피했던 곳으로 3공화국 당시 서울시장이 공관부지를 MBC에 팔려던 것을 행정조정실이 러시아와의 수교 가능성을 들어 반대했다. 덕분에 서울올림픽 때 소련 선수단이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이 됐다.
민속촌 건립=김종필 총리가 재직 당시 직접 추진을 지시했다. 이후 이후락 청와대 비서실장이 청와대에서 직접 주관하고 싶어해 업무가 이관됐다. 청와대가 장소를 경기도 수원 근교로 결정했다.
첫 국정홍보 화보=1975년 박승복 행정조정실장이 우연히 '금일의 일본'이라는 화보를 입수해 본 뒤 방침이 정해졌다. 예산 2,000만원 확보도 없이 제작에 들어갔고 화보용 종이와 잉크도 국내에 없어 전부 수입했다. 일본어판으로 '금일의 한국'이라는 화보가 탄생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책 같은 책이 나왔군"이라고 말했다.
세종문화회관 건립=70년대 북한은 남북 대표 각각 1만명씩 참가하는 민족회의 개최를 제의했다. 박정희 대통령과 김종필 총리는 민족회의 회의장과는 별도로 대규모 회의장을 지을 것을 박승복 행조실장에게 지시했다. 화재로 공터가 된 서울시민회관 자리를 부지로 선택했다.
서울올림픽 유치=정부 특별대책반의 활동비가 없어 문제였다. 예산을 모두 합쳐도 1억5,600만원이 부족해 하는 수 없이 재벌 총수들의 도움을 요청했다. 정주영 올림픽유치준비위원장은 처음에 20만 달러를 내놓고 분담하자고 했다가 나중에 "내가 전부 부담하겠다"고 했다.
남북고위급 회담=90∼92년 8차에 걸쳐 서울과 평양에서 번갈아 열렸던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수석대표인 정원식 총리의 버릇이 문제가 됐다. 정 총리는 대화할 때 고개를 끄덕이며 "응,응"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것이 북측에 대한 동의의 표시로 해석될 수 있어 이흥주 당시 1행정조정관이 "절대로 고개를 끄덕여서는 안 된다"고 간언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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