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너 그리스하머 지음·송병찬 옮김 생각의나무 발행·1만2,000원고교 시절 화학 수업이 재미있었다면 이 책은 무척 읽기 즐거울 것이다. 그 반대이더라도 이 책의 유쾌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버티기는 어려울 듯하다. 속된 표현을 빌자면 정말 '골 때리게' 웃기는 화학책이다. 도대체 "탄소 원자는 콧구멍 후비는 것을 멈추고 핸드폰을 껐다" 로 시작하는 화학책이 있겠는가.
탄소 원자가 받은 전화 내용은 원자들을 위한 획기적 화학 수업이 마련됐으니 나오라는 것이다. 선생님은 원소 주기율표를 만든 화학자 멘델레예프, 그리고 살충제의 위험을 경고한 책 '침묵의 봄'으로 유명한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이다. 탄소는 별 꼴 다 본다는 식으로 코웃음을 친다. 원자 세계를 가장 잘 아는 건 원자 자신인데 사람이 원자를 감히 가르쳐?
어쨌든 수업이 시작된다. 원소 주기율표에 등장하는 109종의 원자가 죄다 참석하고 이산화탄소 등 분자들도 끼어 든다. 그런데 첫 수업부터 뒤죽박죽이다. 원자라는 게 워낙 제멋대로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원자들은 자기 소개부터 한다. 다른 물질과 반응하지 않고 혼자 노는 네온은 '독신주의자 네온 백작' , 공격적인 불소는 '문제아', 안정적 성질을 지닌 금은 '범생이'….
말 안 듣는 학생들 때문에 우왕좌왕하는 두 선생님이 영 답답하게 느껴졌는지 원자들은 직접 수업을 진행하겠다고 나선다. 그리하여 주요 원소들이 각자 자신의 삶을 설명하는 프로젝트 수업이 펼쳐진다. 지구의 중요한 신진대사에 적극 참여하는 원소이자 석유의 핵심 성분인 탄소는 '세계의 수레바퀴에 끼어 든 탄소'라는 주제를, 인간이 사용하는 생산물의 주요 원료인 철은 '철! 지구는 네가 지켜!' 라는 수업을 맡고, 공기의 주성분이자 인체의 신진대사에 꼭 필요한 산소는 '(세탁기 안에서 벌어지는) 밤샘 디스코 파티에 간 산소'라는 제목으로 세탁 과정의 화학을 설명하는 등 각자 자신의 과거와 활약상을 소개한다. '돈가스와 감자튀김' 수업은 인간들이 도대체 뭘 먹고 사는지 보기 위해 레스토랑을 찾아가서 하는데, 거기서 음식물 소화의 화학 수업이 흥미진진하게 벌어진다. 마지막 수업의 제목은 '신나는 컴퓨터 뿅뿅게임'. 노트북 컴퓨터의 액정 모니터 구성물질, 반도체 등에 관한 화학이 다뤄진다.
책의 구성에서 짐작되듯, 이 책은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이 화학과 연관돼 있음을 보여준다.
'원자, 원자를 말하다' 쯤으로 요약될 프로젝트 수업에서, 원자들은 자신들이 여러 가지 화학 반응을 통해 변신을 거듭하면서 세계를 이루는 기본요소로서 어떻게 맹활약하고 있는지 정신없이 묻고 떠든다. 이 요란한 수다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여러 물질의 화학적 성질은 물론이고 산화·환원·이온결합 등 화학의 주요 개념까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는 옆길로 새는 것이다. 원자들이 왕성한 호기심으로 자주 엉뚱한 질문을 던지는 바람에 꼬리에 꼬리를 물며 화학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를테면, '돈가스와 감자튀김' 수업은 레스토랑으로 가던 중 음주운전 단속에 걸린 멘델레예프 선생님 때문에 알코올과 에어백의 화학 이야기가 덧붙여진다. 에어백 속에 무슨 물질이 들어있길래 충격을 받으면 부풀어오르는지, 알코올의 정체는 무엇이며, 음주측정의 화학 원리는 무엇인지 등등.
기발한 착상과 못 말리는 유머로 이 책을 쓴 라이너 그리스하머는 독일인 화학자다. 경쾌하게 내달리며 통통 튀는 문체 덕분에 단숨에 읽어치울 수 있다. 쉽고 재미있는 화학 입문서로 딱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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