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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내가 본 조선, 조선인

입력
2003.06.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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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네프 외 4인 지음 이르게바예브, 김정화 옮김 가야넷 발행·1만4,000원구한말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여행기는 이미 여러 권 나와 있다. 그러나 러시아인들의 조선 여행기로 국내에 번역된 것은 이 책 '내가 본 조선, 조선인'이 유일하다.

대한제국 수립 전후인 1885년부터 1896년까지 당시 조선에 호의적이던 러시아 정부가 파견한 조선탐험대 소속 다섯 명의 장교들이 조선을 둘러보고 본국에 제출한 보고서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이들은 걷거나 말을 타고 조선 전역을 여행하면서 조사하고 관찰한 내용을 자세히 기록했다. 조선의 지리, 군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한 전반적 기초 조사와 연구 결과가 담겨 있다.

이 책은 모두 4장으로 이뤄져 있다. 제 1장은 카르네프와 미하일로프가 함께 쓴 '조선 중남부 여행기'다. 이들은 고종과 대원군을 만났다. 제 2장은 다데슈칼리안 공후가 지은 '조선의 현상황에 대한 짧은 기록'이다. 그는 조선의 기후와 동식물, 인구와 언어, 종교와 관습, 기질과 특성, 복장문화, 농업과 음식문화, 계급제도와 행정조직을 체계적으로 서술했다. 제 3장은 알프탄 중령의 '조선 중북부 여행기'다. 그는 함경남도 원산에서 해안을 따라 함경북도 북단까지 올라갔는데, 조선의 강과 의식주, 당시 조선과 일본의 관계를 주로 썼다. 마지막 제 4장은 베빌리의 '조선 북부 여행기'로 문학적인 글이다.

이방인의 눈에 비친 100여 년 전 우리의 옛 모습을 오늘에 읽는 것은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곤 한다. 이 책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동학농민전쟁, 갑신정변, 명성황후 시해 사건, 아관파천, 단발령 등 이들이 목격하거나 전해들은 당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서술이다.

러시아 장교들은 단발령에 대한 반발이 조선 전역에서 얼마나 강하게 일어났으며, 일본에 대한 조선 백성들의 반감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당시 조선을 둘러싼 일본과 청나라, 러시아의 세력 다툼과 조선 조정의 움직임도 기록했다. 당시 조선의 부끄러운 모습도 언급하고 있다. 예컨대 관직을 돈으로 사고 파는 행위며 백성은 굶주려 죽어가는데 무능한 정부는 손을 놓고 있는 상황, 주권을 쉽게 포기하고 일본에 내줘 버린 정치인들의 비굴함 등이 그것이다.

이 책은 1994년 처음 국내에 번역됐다가 절판된 것을 다시 펴낸 것이다. 당시 러시아력으로 씌어 있던 연도 표기를 양력으로 고치고, 지명 표기의 오류를 바로잡았으며 많지 않지만 역주도 달았다. 책에는 수집가 장성길씨가 모은 100년 전 조선 풍물 사진이 여러 장 들어있어 세월을 뛰어넘어 우리 옛 모습을 짐작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러시아인이 쓴 것이다 보니 당시 러시아의 이해를 따르는 편향성이 없지 않고, 더러 사실과 다르거나 정확하지 않은 기록도 있다. 이런 점은 옮긴이의 주 또는 역사 전문가의 감수로 보완됐어야 하지만 이번 책에는 그런 작업은 부족하다. 또 카르네프 일행의 글에서 '우리가 목격한 왕비 시해 사건의 전모'는 그들이 명성황후 시해 사건 네 달 뒤에 서울에 도착했음을 감안할 때 목격담이 아니라 전해들은 이야기가 분명하다. 그런데도 그런 소제목을 붙인 것은 편집자의 실수치곤 큰 실수다. 책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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