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스 올트먼 지음·이수영 옮김 이소출판사 발행·1만3,000원"우리는 더 이상 삶의 모든 측면의 상업화와 상품화에 대해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 …족쇄 풀린 자본주의와 소비주의는 불가피한 현실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태국 작가 아니타 플레우마롬은 방콕 최대 영자지 '네이션(Nation)' 1997년 11월3일자에 실은 풍자 단편에서 이렇게 썼다.
자본주의의 세계화가 지구를 상품의 천국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다국적 기업의 상품이 예외 없이 세계 시장에 파고 들어가고, 그 과정에서 부익부 빈익빈은 전 지구적 현상이 되고 있으니 '천국'이란 표현은 어쩌면 틀린 말이다. 이런 현상은 성의 상품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 온 매매춘의 경우도 다를 바 없다. 그러니까 아니타의 말대로 우리는 거역할 수 없는 전 지구적 성의 상품화 앞에서 걱정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
호주 라트로보대 정치학 교수이며 동성애자 차별 반대 운동에 깊숙히 몸담은 저자는 세계화 시대 성의 상품화 과정과 양상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이고 있다. 짐작대로 국제적 매매춘은 여행이나 이주의 자유, 자본주의 경제의 세계화와 더불어 급속히 번지고 있으며 인터넷 등 과학기술의 발달로 더욱 급속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유럽의 여행객들은 태국 푸켓에서 휴가를 보내고, 나이지리아와 브라질에서 건너온 남녀는 이탈리아 로마와 독일 뒤셀도르프 거리에서 몸을 판다. 많은 이주자들이 댄서, 하녀, 보모 등의 일자리를 구하지만 이런 직업에는 성적 서비스에 대한 기대가 수반되게 마련이다.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의 붕괴로 엄청난 성 노동 성장 시대가 열렸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경제 성장과 전통적 토대의 붕괴를 재촉하면서 더욱 많은 사람을 거의 노예와도 같은 노동 계약과 매매춘으로 내몰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외환위기로 촉발된 1997∼98년의 인도네시아 경제 붕괴 기간 자카르타에는 매춘 여성들이 넘쳐 시 당국이 매춘부 합숙소를 두고 관리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세계화는 성 노동의 정체성이 더 뚜렷해지고 인권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는 결과도 낳았다. 최근 수 년 동안 선진국에서 통상의 매매춘을 범죄로 보지 말고, 대신 강제 매춘이나 아동 매춘을 규제하려는 입법 시도가 진행됐다. 이런 시각의 전환은 남미 에콰도르를 시작으로 몇몇 개발 도상국의 성 노동 조직 발전에도 영향을 미쳤다.
사이버 섹스 등 새로운 유형의 성의 상품화, 식민지배의 제도적 성 착취 등 국제관계에서 성의 문제까지 포괄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저자의 결론은 사회경제적 질서의 불평등은 물론 광범위한 성 및 성별 구조가 내포한 불평등 관계를 개선하는 일이 세계화 시대에 시급하다는 것이다. 너무 현상 드러내기에 치중한 데다, 자신의 관심사인 동성애 문제에 지나치게 집중한 점, '남자는 자신의 남성성을 방어하기 위해 전쟁에 간다'는 데 찬성하는 등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을 일부 펴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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