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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신생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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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신생철학

입력
2003.06.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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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노빈 지음 학민사 발행·1만3,000원낭만적 통일론이나 극우, 극좌의 전쟁 불사 흡수통일론이 아니라 냉철하게 통일의 논리와 통일 이후 민족의 새로운 삶(新生)을 모색하기 위해서 윤노빈은, 혹은 '신생철학'은 우리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그것은 국립대학 철학과 교수 노릇까지 하던 그가 반도의 한 쪽을 버리고 다른 한 쪽을 택한 양 체제의 경험자였다는 낭만적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분단 현실이 비극적 세계사의 집약이듯, 통일의 논리 또한 남북의 화해와 평화뿐만 아니라 세계사의 모순을 극복하고 인류에게 새로운 문명과 삶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간의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음에도 아직까지 몇몇 지성이 1974년 초판이 나온 이 책에 주목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이 책에서 윤노빈의 세계 인식은 절박하다. 그는 오늘의 세계를 '인위적 죽임의 세계'라고 규정하며, 그것이 세계를 보는 서양의 요소론적 세계관에 기인한다고 말한다. 움직이는 세계로부터 운동의 개념을 박탈함으로써 세계를 소유하려는 야심에 가득찬 오늘의 세계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명 유지에 필요한 이상의 낭비와 과잉생산, 과잉공급을 갈망하게 한다.

이런 세계에서 전쟁은 필연이다. 즉, 세계는 생명체가 가진 삶의 통일성을 깨뜨리고 분열, 분할, 분단, 절단해 모든 사람들을 급작스러운 피살 혹은 대규모·대량 서살(徐殺·서서히 죽임)의 위험으로 몰아넣는다.

우리가 이런 아귀지옥의 현실에서 벗어날 길은 연결과 협동, 통일, 공유와 나눔, 주는 행위, 공존으로 표현되는 '거룩한 생존'을 자유롭게 막힘 없이 확장하는 것이다.

윤노빈은 이 협동적 삶의 확장 속에서 브니엘, 즉 동학(東學)에서 인내천(人乃天)이라 했던 우리 안에 계신 하느님의 얼굴을 본다. 여기에 바로 통일과 민족 구원의 길도 있다.

동학의 사상가 이돈화가 지은 '신인철학(新人哲學)'의 후속작인 듯한 제목에서도 짙게 풍기듯 이 책은 기독교와 스피노자, 베르그송의 생의 철학에 기대고 있으면서도 우리 민족 전통사상의 결집체인 동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암울한 시대 상황으로 인해 때론 시적(詩的)이고, 때론 유혈이 낭자한 묵시론적인 언어들 속에서, 메시아를 대망하던 유대인처럼 민족의 생존과 통일, 구원을 향한 그의 절박함을 읽어내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마르크시즘까지 포함하는 서구의 기계론적 세계관을 맹렬히 비난하고 있는 그가 83년 전두환 정권 하에서 월북이란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책에서 드러나고 있는 그의 유기체적 생명 철학이 개체보다 공화심(共和心)의 전체성을 유난히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의 체제와 맞물리는 부분이 있으리라는 짐작을 해보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것이 윤노빈의 사유의 깊이를 훼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전쟁에 대한 도덕적 불감증이나 물신주의 체제의 필연적 환경 파괴 등 현대 문명의 위기를 30년 전의 책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확히 예견하면서 생명과 평화의 철학을 절박하게 제시하고 있다.

윤노빈은, 그리고 이 새로운 삶의 철학은 21세기에도 여전히 분단의 멍에를 벗지 못하고 있는 한반도가 세계 구원의 열쇠가 될 민족의 통일을 위해 넘어야 할 큰 산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윤형근 모심과 살림 연구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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