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세상은 좋아졌다. 누구나 아무런 눈치도 보지않고 대통령과 청와대를 비판해도 괜찮다. 폭력만 사용하지 않는다면 어떤 집단이든 집회와 시위를 갖고 자신의 주장을 펼 수 있다. 청와대나 서울시청 앞에 가면 항상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이제야 비로소 이 땅에 '독재의 그림자'가 걷히고 헌법상의 기본권이 거의 완벽하게 국민에게 되돌려졌다.정치도 그렇다. 무엇보다 이제 더 이상 '전지전능(全知全能)한 대통령'은 없다. 대법원장도, 국회의장도 자기 마음대로 임명함으로써 삼권분립의 정신을 무색케 했던,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불렸던 대통령은 사라졌다. 대신, 자신이 속한 정당마저도 이리저리 못하는, '국가의 통치자'에서 '행정부의 수반' 정도로 의미가 축소된 '힘 빠진 대통령'이 있을 뿐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비명에 가고 두 명의 군 출신 대통령에 이어 민주투사 YS와 DJ의 시대 10년을 거치면서도 떨쳐내지 못했던 우리 사회의 '박정희 패러다임'이 급격히 깨져나가고 있다.
이렇듯 좋아진 세상은 당연히 시끄럽게 돼있다. 원래 민주주의 사회란 적당히 시끄러운 것이 정상이고 어떤 명분과 이유에서든 '지나치게 조용한 사회'는 비정상일 수밖에 없다. 자기 생각을 누구나 말할 수 있고, 뜻이 맞는 사람과 단체를 만들 수 있고 또 자기의 이익을 위해 행동에 옮길 수 있는데 어찌 조용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지금의 상황을 '국정의 위기'라는, 적지않은 사람의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권력에 짓눌려 눈치 보며 살아왔던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음은 너무도 자명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과거의 왜곡된 체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회로 바뀌어나가는 '과도기적 현상'이라는 노 대통령의 강변을 믿고 싶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말은 거기에서 끝나야 한다. 이렇듯 '좋은 세상'이 온 것은 노 대통령이 잘나서가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이 이회창 후보 대신 노무현 후보를 선택함으로써 '박정희 패러다임'을 거부한 것이다. 그리고 국민은 달라진 사회체제가 잘 굴러갈 수 있게 해달라고 노 대통령에게 숙제를 맡겼다. 운동권 서클의 선배가 들려주는 듯한 어설픈 정치철학 사회철학 역사철학 강의는 그만 접고, 말보다는 행동으로 새로운 사회의 '효율성'을 높여달라는 주문이다.
후진국의 독재정권을 합리화하는데 동원됐던 개념이지만, 우리 정치에 있어서도 '효율성'이 갖는 무게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지금도 박정희 정권을 그리워하고 "그래도 전두환은 경제 하나는 확실히 했어"라고 하는 사람은, 그 정권들이 못가진 '정통성'보다 '효율성'이 더 가슴에 와닿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또한 적지않은 사람이 YS·DJ 정부에 대해 "민주주의 한다면서 한 게 뭐 있어"라며 무능함을 탓하고 있다. 이 마당에 우리 사회에 세대교체의 바람을 불러온 노 대통령마저 '효율성'을 높이는데 실패한다면, 그것은 비단 대통령 개인의 비극으로만 끝날 일은 아니다.
노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맞았을 때 "아직 시스템이 정착하지 않았다. 3개월만 더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러나 불행한 일이지만 노 대통령의 노력에는 첫 단추가 잘못 꿰어져 있다. 새로운 시스템의 기본이라는 '대화와 타협'이 가능하려면 '생각이 다른 사람과 살아가는 법'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노 대통령 스스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견디지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대화와 타협'이 가능하겠는가.
신 재 민 정치부장 jm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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