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18일) 프로축구 K리그는 오랜만에 신명 나는 무대였다. 그라운드의 선수들은 팬들의 함성에 힘이 솟는 듯 했고 스탠드의 관중들도 축구의 묘미를 쏠쏠히 맛본 것 같아 흐뭇했다.우선 정확히 1년 전 한일월드컵 16강전서 이탈리아를 꺾고 '8강 신화'를 이끌어낸 현장인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는 '그날의 감동'이 고스란히 재연됐다고 한다. 주중임에도 불구, 수용 규모(4만3,000명)를 웃도는 4만3,077명이 들어 찼고, 올 시즌 돌풍의 주역인 대전 홈 팬들은 '비 더 레즈'(Be the Reds) 티셔츠로 스탠드를 붉게 물들였다.
경기 내용도 '축구의 의외성'을 보여주었다. 상승세의 대전은 이날 홈 7연승에 도전했지만 태극전사인 울산의 유상철, 이천수 등에게 구멍이 뚫려 0―4로 대패했다. 사실 이 정도의 점수차를 예상한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선두 성남과 안양의 경기도 땀을 쥐게 했다. 지난해 최우수선수(MVP) 김대의가 전반 초반 일찌감치 2골을 뽑아낸 성남의 낙승이 예상됐지만 안양의 '젊은 피' 정조국이 종료 14분을 남겨 놓고 2골을 몰아 넣어 결국 3―3으로 비겼다. 지난해에 이어 올 시즌 초반 K리그가 다소 맥이 빠진 건 성남의 독주가 큰 원인이었다는 점에서 이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안양의 근성은 칭찬할 만 하다. 돌아온 '진공청소기' 김남일(전남)이 7개월 만에 K리그 복귀전을 치른 광주에서도 굵은 빗속에 김남일은 물론 이동국(광주)을 연호하는 '오빠 부대'의 함성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내가 현장에서 지켜 본 대구와 포항 경기는 프로다운 볼거리가 드물어 아쉬웠다. 팬들은 호쾌한 드리블과 상대 수비를 단번에 무너뜨리는 날카로운 패스, 이에 덧붙여 코칭스태프의 전술과 전략이 적절히 버무려진 수준 높은 축구를 기대했지만 양 팀은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한때 K리그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축구계 일각에서는 'CU@K리그'를 다짐한 팬들이 약속을 저버렸다고 아쉬워했다. 우리 국민의 '냄비 근성'을 탓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18일 경기는 K리그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고 싶다. 팬들은 화끈한 골 세리머니는 물론 아기자기한 플레이에 목말라 있다. 프로 선수라면 당연히 이 같은 목마름을 풀어주어야 한다. 또 팬들을 웃고 울리는 스타 플레이어가 존재하는 한 스탠드는 썰렁해지지 않는 법이다.
/전 국가대표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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