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는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때로는 학생에게 배우기도 한다. 며칠 전 퇴근길에 혜진이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혜진이는 현재 소아 백혈병에 걸린 아이들을 돌보며 공부도 도와주는 착한 대학생이다.전화한 이유를 물었더니 "공부를 도와주는 아이 중에 나이로 치면 중3뻘인 용인이가 있는데 고입 검정고시를 보려고 한다. 그런데 학교를 그만 둔 지 1년이 안돼 응시 자격이 안 된다. 이 사실을 그대로 알려주면 실망할 텐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는 내용이었다. 몸이 아파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용인이란 아이가 또래들과 같이 고등학교 생활을 하고 싶었나 보다. 그것도 무척이나…. 혜진이 말로는 주변에서 함께 투병생활을 하던 아이들이 하나 둘 하늘 나라로 떠나는 걸 지켜보며 용인이가 매우 고통스러워 한다고 했다. 이런 아이에게 자격이 안 되니 검정고시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전해주는 게 혜진이로서는 무척이나 난감했을 것이다. 교사인 내가 혹시 무슨 좋은 방법을 알고 있을까 싶어 전화한 것이리라. 그러나 나도 혜진이에게 딱히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혜진아. 그건 법에 정해진 것이라 용인이 아버지가 교육청이나 학교에 찾아간다 해도 별다른 방법을 찾을 수는 없을 거야. 네가 용인이 부모님께 확실하게 알려드리는 게 나을 것 같구나. 괜히 기대를 가지고 학교에 갔다가 실망하시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니"라고만 했다. 정말 더 이상 해줄 말이 없었다.
전화를 끊고 착잡한 마음이 되어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자메시지가 왔다. '선생님, 말씀드렸습니다. 도움 고맙습니다. 헤헤.' 내가 도와주긴 뭘 도와줘. 해준 게 하나도 없는데 날 보고 고맙다니. 뭔가 뭉클한 느낌이었다. '혜진아, 우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자. 이럴수록 더 열심히 살자.' '네. 우린 더 열심히 살 거에요. 이런 돌부리에 걸릴 때마다…. 한 주도 평안하세요.'
아픈 용인이 덕에 오히려 내가 힘을 얻게 되었다. 몸이 아파 원하는 공부도 맘껏 하지 못하는 아이가 있는데 인생을 그저 그렇게 살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꿈조차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스러진 아이들보다는 호흡도 더 많이 하고 먹을 것도 더 많이 먹었으니 더 힘을 내고 힘든 이들을 도우며 살아야겠다.
/남궁현· 인천 대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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