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클리프 행어'에서 주인공 실베스타 스텔론은 별다른 장비 없이 맨 손으로 가파른 절벽을 오른다. 보는 이의 가슴을 섬뜩하게할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암벽을 타면서 정상에 도달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절로 탄성이 난다.요즘 서울 중심가에 스텔론을 연상케 하는 클라이머들이 많아졌다. 18일 오후 7시, 서울 무교동 코오롱빌딩 지하 실내 암벽장인 '매드짐'에는 넥타이를 맨 샐러리맨들이 하나 둘씩 모여 들었다. 퇴근하자 마자 달려왔다는 김성운(36·회사원)씨는 "홀더(손잡이)에 정신을 집중하다보면 근심 걱정이 모두 사라지고 회사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훌쩍 날아간다"고 말했다.
살빼기 효과로 여성들에게도 인기
특히 일반인들에게 아직 생소한 인공 암벽 등반이 살 빼기에도 효과가 높은 것으로 알려지자 암벽장을 찾는 '스파이더 우먼'도 크게 늘었다. 일부 인공 암벽장의 경우 고객의 40%가 여성일 정도다. 주부 김현정(32)씨는 "둘째 아이를 낳은 뒤 계속 느는 체중을 줄이기 위해 실내 암벽 등반을 시작했다"며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는데도 한달 만에 몸무게가 3㎏이나 줄었다"고 자랑했다.
학교 안에 인공 암벽장을 갖춘 서울 양천구 목동 양정고등학교 진달용 교감은 "방과 후 암벽을 타는 학생들이 많이 늘었다"며 "암벽을 타며 땀을 흘리면 공부에서 오는 압박감을 씻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등반 경력 15년의 프랑스인 마크 파바(27·사노피-신데라보 코리아 애널리스트)씨는 "날씨에 관계없이 언제든지 즐길 수 있는 게 실내 암벽 등반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실내 암벽 등반이 인기를 끄는 것은 극도의 스릴과 성취감 때문. 금세 떨어질 듯 위태로운 상황을 극복하고 정상에 올랐을 때 느끼는 쾌감은 다른 어떤 스포츠에서도 맛볼 수 없다. 올해부터 전국체전에 전시종목으로 채택됐고 정식 종목으로 될 가능성이 높아 학생들 사이에도 인기가 높다.
어떻게 즐기나
인공 암벽 타기는 간단한 장비에 2∼3일 정도 안전, 장비 착용법, 등반 실전 등에 관한 기초 교육을 받으면 쉽게 즐길 수 있다. 3∼4m의 낮은 암벽에서는 간편한 복장에 암벽화만 신으면 가능하며, 높은 곳은 장비, 밧줄(자일), 하강기, 초크통 등의 안전장치가 추가로 필요하다. 높은 암벽장에서는 2인1조로, 한 사람이 암벽을 오를 때 다른 한 사람이 밑에서 밧줄을 잡고 안전을 확보해줘야 한다. 초보자용 장비는 15만원 정도면 갖출 수 있다. 강북청소년수련관 등 지자체나 공익단체가 운영하는 암벽장은 초기 교육비도 1만원 밖에 안 된다.
실내 암벽 등반 방법은 인공 암벽이 촘촘히 붙어 있는 홀더(손잡이)와 스텐스(발 디딤 공간)를 이용한다. 클라이머는 손과 발을 적절히 옮겨가며 조금씩 몸을 이동시키면 된다. 인공 암벽 높이는 보통 3∼15m까지 매우 다양하다. 암벽과 조형물의 구조 역시 90도를 이룬 수직 벽을 비롯해 120도 각도의 오버행(Over Hang), 루프 등 코스가 다양하다.
1년돼야 오버행 등반 가능
실내 암벽 등반이라고 하면 위험하다는 생각부터 하기 쉬운데 그렇게 위험한 운동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안전벨트를 비롯해 바닥에 푹신한 매트리스가 깔려 있는 등 각종 안전 장치가 있어 사고 위험은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그렇다고 마냥 쉽게 보아서는 안 된다. 서울시산악연맹 등반경기 김태삼 이사는 "코스가 어려운 오버행을 등반하려면 1년 정도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등반 실력을 키우기 위한 테크닉도 필요하지만 손가락과 팔, 어깨 등의 근육을 꾸준히 강화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프로 클라이머들도 훈련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안전사고를 당하지 않을 정도로 위험하기 때문이다.
김태삼 이사는 "무엇이든지 첫술에 배부를 수 없고 처음에는 풋 홀드에 두 발을 지탱한 채 오래 버티는 운동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대부분 초보자들은 이것도 5분 이상 버티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등반전에 스트레칭하고 섣부른 고난도 도전 금물
인공 암벽 등반은 전신 운동이어서 부상 위험이 높다.
암벽 등반을 지나치게 많이 하면 근육, 힘줄, 인대 등이 삐거나 손상 등을 당할 수 있다. 특히 초보자의 경우 실력을 높이려고 매일 암벽에 매달리기 쉬운데 휴식을 하지 않고 매달리다 보면 피로물질이 축적돼 부상 가능성이 높아진다. 인천 힘찬병원 정형외과 이수찬 원장은 "이틀에 한 번 정도는 휴식을 취해 피로를 회복할 수 있는 기간을 주어야 부상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암벽 등반은 손과 팔을 많이 쓰는 운동이기 때문에 손가락을 다치기 쉽다. 따라서 손가락에 걸리는 부하를 약하게 시작해 부하 강도를 점점 높이는 방식으로 훈련하는 것이 좋다.
다리 부상을 예방하기 위해 암벽의 각도를 적절히 선택해야 한다. 초보자들은 체중이 주로 하체에 실리기 때문에 다리 근육과 관절을 다치기 쉽다. 반드시 45도의 벽부터 시작해 발 감각과 하중에 대한 적응력을 키운 다음 고난도로 넘어가야 한다. 등반을 시작하기 전에 스트레칭을 하는 것도 부상 예방에 도움이 된다. 나누리병원 장일태 원장은 "스트레칭은 목, 어깨, 팔꿈치, 손목, 손가락, 배 근육, 허리, 발목 순으로 실시하되 등반 동작에 가깝게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권대익기자
● 인공 암벽장 이용
인공 암벽 등반은 합판이나 건물 벽면에 구멍을 뚫거나 인공 손잡이를 붙여 손과 발만으로 등반을 즐기는 레포츠로 '스포츠 클라이밍'(sports climbing)이라고도 부른다. 이 운동은 1940년 프랑스의 산악가이드 가스통 레뷔파가 각목과 널판지를 이용, 산악등반 교육·훈련용으로 사용한데서 비롯됐다.
국내에선 1988년 서울 서초동에 살레와스포츠센터가 폭 5m, 높이 4m의 인공암벽장를 처음 개장한 이후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2000년 이후 각 지방자치단체가 실외 암벽장을 경쟁적으로 설치하면서 현재 200곳에 인공 암벽장이 있으며 실내 인공 암벽장은 50여개가 넘는다. 동호인 수도 4만∼5만명. 실내 인공 암벽장 가운데 서울 강남구 포스코 본사에 있는 포스코 실내 인공 암벽장이 유명하다. 이 곳의 인공 암벽은 일반 건물 7층 높이에 해당하는 25m 높이와 오버행을 비롯한 다양한 경사도를 갖춰 클라이밍 마니아라면 한 번쯤 도전해 볼만하다.
이 밖에 클라이머가 많이 찾는 암벽장은 서울 지역에서는 매드짐을 비롯, 클라이밍스포츠센터, 클라이밍아카데미, 에이스클라이밍프라자 등 20곳 가까이 되며, 경기 고양의 올림픽스포츠센타 인공암벽장, 수원 권선동 클라이밍센터 등에도 개설돼 있다. 실내 암벽장 이용료는 대개 월 5만∼7만원선. 간편한 옷과 전용 신발(암벽화),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한 탄산마그네슘 가루(초크)가 기본 장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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