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라 코리아는 1991년 창립 이래 딱 두 번 세일을 했다. 생산 물량의 절반만 정상가로 판매해도 장사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국내 브랜드 사업의 관행을 생각하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내수 분야에서 휠라 코리아의 정상가 판매는 매년 80% 이상을 유지해왔다. 비결은 별게 아니다. 휠라 코리아가 '노 세일' 정책을 고집스럽게 밀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재고를 최소화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의류 업체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세일을 하는 것은 모두 재고를 줄이기 위해서다. 재고가 쌓이는 것보다 헐값으로라도 팔아서 생산비 일부를 건지고, 창고 관리비 등 불필요한 비용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건비가 훨씬 싼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생산하지 않고 국내에서 생산하기로 결정한 것은 일정 수준의 품질 확보를 위한 것도 있었지만, 국내 생산이 재고 관리에 수월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해외 생산은 재고 관리가 힘들다. 휠라 코리아에서 디자인을 정해서 생산기지로 물량을 주문하면 그 쪽에서 제품을 만들어 국내에 들어오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려 생산 조절이 쉽지 않다.
반면 국내 생산은 그렇지 않다. 수시로 변하는 시장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생산조절이 가능하다. 20원짜리 물건을 10원에 사는 것보다는 30원을 주고 사더라도 재고를 낮출 수 있다면 그게 훨씬 더 이익이다.
다른 회사보다 서둘러 구축한 전산 시스템도 재고량 조절에 큰 도움이 됐다. 본사 및 각 매장별로 하루 동안의 판매량은 물론, 물류 이동, 상권 분석 등을 꼼꼼하게 전산 자료로 만들어 놓은 덕분에 재고가 크게 줄어들었다.
지금도 휠라 코리아는 본사는 물론 대리점별 재고 파악이 매일매일 가능하다. 재고량이 정확하게 파악 되기 때문에 제품 주문 양을 조절할 수 있고 수요에 맞지않는 불필요한 생산도 없어졌다. 특히 전산화 작업을 해놓으니까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소비자들 취향 변화도 한눈에 들어왔다. 소비자들이 원하지 않는 제품이 무엇인지 최대한 빨리 알 수 있다면 재고는 그만큼 줄어든다.
재고 최소화와 더불어 내가 가장 신경을 쓴 것은 품질 관리였다. 수차 밝혔듯이 품질 관리야말로 제조업의 생명이나 다름없다.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던 나는 나름대로 여러 방법을 동원했다.
우선 인건비가 싼 동남아나 중국에서 생산하지 않고 한국에서의 생산을 고집했다. 누구나 인정하듯 한국인의 손재주는 남다르다. 정성 들여 만들기만 하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명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솜씨다.
문제는 얼마나 정성을 기울이느냐에 달려있다. 이를 위해 내가 고안한 것은 생산 공장별로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더 좋은 물건을 만들어 내는 공장에 더 많은 돈을 주는 시스템이다.
현재 휠라 코리아는 자체 생산 공장이 없다. 75개 정도의 중소 협력업체를 통해 제품을 공급 받고 있다. 하지만 협력업체에서 스스로 알아서 철저한 품질관리를 하고 있어 본사에서 따로 이래라 저래라 간섭할 필요가 없다.
전산화 시스템을 통해 각 공장에서 나오는 제품과 판매 실적, 반품 수량 등이 수시로 확인돼 공장의 성적표가 매일 나온다. 성적이 좋은 공장에게는 정해진 기준에 따라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성적이 일정 수준 이하로 내려가면 거래를 끊는다. 이렇게 해놓으니 공장들이 스스로 알아서 품질 관리에 열을 올릴 수 밖에 없다. 인센티브 제도를 92년부터 도입했는데, 제도를 실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소비자 반품률이 0.4% 이하로 묶였다.
공장 입장에서는 물건을 잘 만들면 만들수록 돈을 많이 벌고, 휠라 코리아는 품질 관리를 할 수 있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인센티브 제도는 협력 업체들이 휠라 코리아와 한배를 탔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역할까지 한 것 같다. 비록 협력 업체지만, 내 물건이라는 생각을 갖고 만드는 것과 다른 사람 물건이라고 생각하고 만드는 것은 제품 자체가 다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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