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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슬의 마음을 잇는 책읽기]오리건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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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슬의 마음을 잇는 책읽기]오리건의 여행

입력
2003.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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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칼 글·루이 조스 그림 미래M&B영화 장르 중에 '로드 무비'가 있다.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나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레인 맨'이 바로 그런 영화다. 로드 무비는 혼자 혹은 둘 이상이 길을 떠나 그 길 위에서 일어나는 일과 만나는 사람을 주로 그린다. 목적지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된다. 공통점이 있다면 그 길 위에서 주인공들은 몰랐던 혹은 잊거나 감추었던 자신을 발견하게 되며, 길의 끝에서는 무언가 한 꺼풀 벗어 던진 자신과 만나게 된다. 일종의 성장소설과 같은 이런 영화 기법으로 그려진 그림책이 있다. '오리건의 여행'은 '로드 무비'가 아니라 '로드 픽처 북'인 셈이다.

오리건은 서커스에서 재주부리는 곰이고 난쟁이 듀크는 얼굴에 분칠을 하고 빨간 코를 단 어릿광대다. 어느 날 불쑥 오리건이 꺼낸 "듀크, 나를 커다란 숲 속으로 데려다 줘"라는 말에 듀크는 오리건을 고향인 미국의 오리건주에 데려다 주기 위해 길을 떠난다.

그들을 구속하던 곰 우리의 열쇠꾸러미와 무거운 짐은 놓아 둔 채. 버스와 기차를 타고, 차를 얻어 타고, 때로는 걸어서, 그들은 동부의 피츠버그를 출발해 로키산맥을 넘고 미국의 곡창지대인 대평원을 지나 마침내 목적지인 오리건주에 도착한다.

그림책에서 듀크와 오리건의 여정 동안 죽 이 둘의 그림자가 분리되지 않는다. 어쩌면 오리건은 자유를 원하는 듀크 내면의 또 다른 듀크였는지도 모른다.

늘 사람들 앞에서 광대노릇으로 자신을 보여주기만 하던 듀크는 길 위에서 비로소 자유를 만끽한다. 우박이 내리면 그대로 맞고, 옥수수 밭에선 잔치를 벌이고, 별빛 아래에서 꿈을 꾸고, 아침 새소리에 잠을 깨는 그. 마지막 남은 동전 두 개로 강물 위에 물 수제비를 뜰 때, 온 세상이 그의 것이 되고 자유는 절정에 다다른다.

트럭을 공짜로 태워 준 흑인 운전사가 "이젠 서커스 무대에 서지도 않는데, 왜 아직도 빨간 코에 분칠을 하고 있소?" 하고 묻자, 듀크는 "난쟁이로 사는 게 쉽지 않아요…"라고 얼버무린다. 그러자 운전사는 "그럼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에서 흑인으로 사는 건 쉬운 일 같소?"라고 되묻는다. 듀크는 처음으로 어릿광대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만이 사회에서 소외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듀크가 오리건의 무등을 타고 바람을 맞으며 노란 밀밭을 걸어가는 그림, 먼동이 트는 아침에 기차에서 내려 오리건의 숲을 바라보는 모습, 눈 내리는 숲길을 걸어가는 듀크의 뒷모습 그림은 읽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게 해 줄 것이다.

그림책이지만 많은 내용을 가진 책이다. 어른에게도 매혹적이다. 다만, 내용에 나오는 많은 지명에 대한 설명과 그들의 여정을 표시한 미국 지도를 곁들인다면 어린 독자에게 친절한 책이 될 것이다.

/대구 가톨릭대 도서관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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