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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북·일 빙하기

입력
2003.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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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치인들에게 북한은 애물단지 같은 나라다. 일본인들의 지독한 북한혐오에 다이얼을 맞추면 강경할수록 인기가 올라간다. 그러나 일본과 국교가 없는 유일한 나라라는 측면에서 보면, 공을 들여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유별나게 공산주의를 싫어했던 보수 정치인 고(故) 가네마루 신 부총리의 90년 평양 방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지난해 9월17일 평양행도 그런 까닭이라 하겠다. 일본총리로서는 처음이었던 이 방북 정상외교는 기대보다 성과가 커 정치인 고이즈미의 꿈이 실현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일본인 납치사실을 시인하고 사과한 김정일의 언사가 덫이 되고 말았다. 심증만 가졌던 일이 사실이 된데다, 피랍자 대다수가 죽었다는 통고가 북한 혐오증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여론은 일시방문으로 귀국한 피랍자들을 돌려보내지 말도록 압력을 가해 일본에 주저앉힘으로써, 또 한번 가족 이산의 비극이 연출되었다. 북한을 의식해 한동안 김일성 배지를 달고 다니던 그들은 이제 공개적으로 북한을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회담 한달 여 뒤에 불거진 핵 문제도 두 나라 관계를 빙하기로 되돌려 놓는데 일조했다.

■ 소신 있게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하던 고이즈미가 격앙된 여론과 미국의 압력에 굴복한 것일까. 북한 핵 평화해결과 대북 수교회담을 강조하던 그는 이제 가장 충실한 미국의 추종자가 되었다. 북한 여객선 만경봉호 입항거부로 출발한 대북 봉쇄조치는 화물선으로 확대되어 북한의 목줄을 조이고 있다. 법무성 해상보안청 경찰청 등 모든 항만업무 유관기관이 관계법 규정에 따라 그 배를 타고 오는 사람과 화물과 돈을 철저히 조사하고 감시하겠다는 위협 때문에 북한은 만경봉 원산 출항을 포기하고 말았다.

■ 일본 항만을 드나드는 북한 화물선들에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조총련 관련기관에 대한 조직적인 압박도 시작되었다. 연간 1,000척이 넘는 화물선 짐들을 샅샅이 뒤지겠다는 것은 미사일과 핵 개발에 이용될 계기와 마약류 밀수를 의식한 조치다. 준 외교기관 대접을 하던 조총련 관련 기관 면세철회와 관련 무역회사 수사 같은 조치도 전례 없던 일이다. 이런 일들 하나하나가 북한의 업보고 보면 야박하다고 탓할 수는 없으리라. 그러나 그 냉기류가 민간으로 번져 죄없는 재일동포 괴롭히기로 변하고 있으니 가슴 아픈 일 아닌가.

/문창재 논설위원실장 cjm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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