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노동당 정권의 전직 장관 2명이 17일 "정부가 전쟁을 합리화하기 위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 위협을 과장했다"며 토니 블레어 총리를 맹공격했다.블레어를 비난한 두 주인공은 유엔 동의 없는 이라크전에 항의해 개전 직전 사임한 로빈 쿡 전 외무장관과 지난달 사임한 클레어 쇼트 전 국제개발장관. 이들은 이날 하원 외교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 블레어 정부가 전쟁의 명분으로 제시한 이라크의 WMD 정보는 과장과 자가당착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쿡 전 장관은 '이라크가 45분 내에 대량살상무기 공격을 할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한 정부 보고서에 대해 "명확한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또 "전쟁 결정을 내려놓고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정보를 선별적으로 활용했다"며 블레어 정부의 정보조작을 비난했다.
그는 서방의 정보는 이라크의 철저한 보안으로 인해 애초부터 신빙성과 객관성을 갖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사담 후세인 체제의 보안은 서방 정보기관이 침투할 틈새가 없을 정도로 견고했다는 것이다.
쇼트 전 장관도 "나는 미국과 영국이 올해 초에 전쟁을 일으키기로 이미 지난해 여름 결정한 것으로 믿는다"며 "이 같은 전쟁 시간표 때문에 이라크의 위협이 과장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블레어 총리가 작정하고 국민을 기만하려 했다기보다는 자가당착에 빠져 있었다고 말했다. 전쟁을 위해 이라크의 위협을 과장하는 행위를 "명예로운 사기"로 여겼다는 것이다.
블레어 총리측은 이들의 주장에 대해 "하원의 조사보고서가 나올 때까지 결과를 지켜볼 것"이라며 즉각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다. 블레어 총리는 앞서 의회의 청문회 증인 출석 요구를 거부했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18일 블레어 총리의 체면을 더 구기는 내용을 보도했다. 전쟁 후 영국 정부가 WMD의 소재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이라크 최고위급 포로들을 석방하자고 미국에 수 차례 제안했으나 거절 당했다는 것이다. 석방과 WMD 정보를 교환하자는 이 제안을 낸 것은 블레어 총리가 그만큼 궁지에 몰렸다는 것을 뜻한다.
전직 장관들의 비난으로 블레어 총리의 정치적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공공부문의 급진적 개혁을 내세워 정치력 재확보를 시도하던 블레어 총리의 노력은 이라크전 개전 정당성 논란에 발목이 잡히게 됐다.
/배연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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