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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과 극장가기/돋보이는 리얼리티 "서늘한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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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과 극장가기/돋보이는 리얼리티 "서늘한 감동"

입력
2003.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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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살인의 추억'이 한 바탕 바람을 일으켰는데, 물 건너 온 미국 영화 '나크'(사진)도 소재를 대하는 자세가 '살인의 추억' 못지않게 겸손하다. 이 영화는 경찰 살해 사건에 관한 에롤 모리스의 다큐멘터리 '가늘고 푸른 선'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된 액션 스릴러다. 픽션이 논픽션의 박진감을 누를 수 있을까. 과연 '나크'는 실제 벌어진 살인사건에 대해 섣불리 결론짓지 않고 여러 사람의 회상과 기억이 교차하는 꽤 복잡한 구조로 디트로이트의 누추한 현실에 파고 들어간다. 수많은 미국 영화에서 의도적으로, 또는 하는 수 없이 번드르하게 꾸며진 현실의 속내가 이 영화에선 가차 없이 드러난다. '좋은 친구들'의 레이 리오타는 뚱뚱해진 체구로 결코 호감을 줄 수 없는 막무가내 형사 캐릭터 헨리로 나온다. 그의 파트너인 '스피드 2'의 제이슨 패트릭도 한때 마약중독에 절었던 닉 탤리스란 볼품없는 형사로 나온다. 그들이 동료 형사의 죽음 원인을 탐문하는 디트로이트 뒷골목의 짜증나는 면면은 또 어떤가.영화 내내 어둡고 침울하게 이어지는 '나크'는 조 카나한이란 감독의 데뷔작이며 끝까지 보고 난 관객에게 서늘한 감동 비슷한 것을 전해준다. 이 타락한 도시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윤리는 무엇인지에 관해서, 그저 낄낄대며 나만 편하면 그만이라고 살아가는 속인들에게도 지켜야 할 윤리가 사라졌을 때 어떤 비극이 닥치는지를 낮은 목소리로 말해준다. 영화의 상당수를 핸드 헬드로 거칠게 찍은 촬영은 다큐멘터리의 실감을 주기 위한 의도적 장치인 듯하지만 그런 속 보이는 장치보다 심금을 울리는 것은 영화가 던지는 근본적 의문 때문이다.

'나크'와 같은 유형의 영화를 굳이 극장에서 보기 원하지 않는 관객에겐 다른 수가 있다. 찰리 채플린의 후계자인 영국 코미디언 로완 앳킨슨이 나오는 '쟈니 잉글리쉬'를 보면 된다. 미스터 빈으로 알려진 이 코미디언은 이 영화에서 예상할 수 있듯 사정 없이 망가지는 엉터리 첩보원으로 나온다. 한 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지만 이 사람에게 실수는 영원히 고칠 수 없는 생활 패턴일 뿐이다. 그는 실수하고 만회하기 위해 또 실수하며, 거듭된 그 실수가 웃음을 부른다. 채플린이 꽂은 문명비판 정신 따위야 찾아볼 수 없지만 이 배우에게서 세상 사는 여유를 잠시라도 얻은 듯한 착각을 만끽할 수 있다.

지난주 개봉작인 '폰 부스'는 제목에 충실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공중전화 부스에서 벌어지는 내용. 운수 나쁜 한 남자가 공중 전화기를 붙들고 테러리스트와 씨름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오해한 세상 사람들에게도 하소연해야 하는 기막힌 상황을 전한다. 테러리즘의 공포에 휩싸인 미국인의 집단의식을 자극할 만한 이야기이며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들다가 틈만 나면 저예산 영화 프로젝트에 매달리는 조엘 슈마허 감독의 특이 체질이 잘 드러난다.

김지운의 세 번째 장편이자 공포 영화인 '장화, 홍련'은 상영 시간 내내 빽빽 소리 지르게 만들다가 서둘러 우리를 놀라게 한 공포의 원인을 마지막 반전에 설명하는 영화로 촬영, 미술, 연기는 수준급이지만 플롯은 성에 차지 않는 이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빽빽 소리 지르게 하는 공포 때문에 흥행에는 성공할 것이다. 세상에! 뜻밖에도 매저키스트 관객이 많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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