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밤 구속된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150억원 수수 혐의가 파문을 낳고 있는 가운데 돈의 최종 사용처와 수사진행 방향에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150억원의 행방은
구속영장에 따르면 박씨가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에게 150억원을 요구한 명목은 남북정상회담 준비 비용이다. 그러나 정상회담 준비자금 조달에 현직 문화관광부 장관이자 정권 실세인 박씨가 직접 나섰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150억원 정도의 비용은 국정원 예비비 등에서 얼마든지 표시나지 않게 당겨 쓸 수 있는 규모다. 때문에 금품수수가 사실이라고 가정할 경우 150억원은 정치자금으로 전용됐을 것이라는 게 가장 일반적인 추론이다.
특검 수사 어디까지
현재까지 박씨의 금품수수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은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의 특검 진술이 전부다. 박씨에게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한 이상 특검팀은 공소 유지를 위해서라도 박씨에게 돈이 직접 흘러갔음을 증명할 물증을 확보해야 한다. 특검팀은 지금 150억원의 계좌추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 어떤 돌발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박씨가 받은 150억원어치의 CD는 2000년 4∼5월 사채시장을 통해 현금화하는 과정을 거쳐 어딘가로 흘러갔다. 현금화한 자금이 일단 박씨 관련 계좌로 들어간 이후 정치자금 용도로 집행되었을 것이라는 것이 가장 일반적 추론. 이럴 경우 박씨 관련계좌에 돈이 들어간 사실을 밝혀내는 것만으로 특검팀의 수사목적은 충분히 달성된다.
정치자금으로 썼든, 개인적 용도로 착복했든 이후의 자금집행 상황은 특검이 관여할 바가 아니다. 150억원의 최종 용처에 대한 수사여론이 비등할 경우 검찰에 이첩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자금 흐름이 예상처럼 간단명료할 지는 전혀 예측불허다. 특검팀 관계자는 "돈이 박씨에게로 모아진 후 빠져나갔다는 가정은 희망사항에 불과하다"며 "돈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었을 경우 특검팀이 이를 못 본 척 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만일 박씨를 거치지 않고 직접 정치권 인사에게 돈이 전달된 사실이 계좌추적결과 밝혀진다면 수사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특검 수사가 정치자금 수사로 급진전할 가능성을 현재로서는 배제할 수 없다. 그것은 특검팀의 의지를 넘어서는 일이다.
증폭되는 의문
파문이 불거진 과정과 관계자들의 입장, 진술 등을 종합해 볼 때 특검이 발표한 박씨의 혐의에는 의문들이 가득하다. 현재 박씨가 이씨로부터 직접 돈을 받았는지도 명확치 않다. 이씨의 한 측근은 "예비 접촉 후 이 전 회장은 박씨를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대질 조사에서 나온 이씨의 폭탄 발언은 이씨의 변호인조차 사실관계를 파악하지 못한 돌출 행동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정황은 이씨의 특검 진술이 일정 부분 왜곡됐을 가능성도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박씨가 사업가이자 지인인 김영완씨의 계좌를 통해 150억원을 받았다는 부분도 미심쩍다. 특검팀 관계자는 "만약 김씨가 취급한 돈이 검은 돈이라면 실명을 이용했겠느냐"며 김씨 계좌 입금 가능성을 부인했다. 현재로서는 이씨와 김씨가 '배달사고'를 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할 상황이다.
/이준택기자 nag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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