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현재의 국내 경기에 대해 그동안 과도하게 증가했던 소비가 조정되는 일시적인 경기순환 국면으로 간주하면서, 하반기부터는 수출과 내수가 점차 늘어나면서 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당국의 전망은 미국 등 선진국들의 적극적인 경기진작 대책으로 올 하반기 이후 세계경제가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에 근거하고 있다.그러나, 정책당국의 이러한 기대와는 달리 최근 미국 경제는 주식시장만 긍정적인 신호를 보낼 뿐 거시경제지표가 개선되는 징조는 거의 없으며, 유럽이나 일본은 오히려 불황이 심화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의 주가 상승세도 설비투자나 소비의 확대로 인한 향후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 때문이라기보다는 저금리가 계속되면서 확대된 유동성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국내 거시경제 상황은 더 열악한데, 소비와 수출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으며, 기대했던 투자마저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않다. 경제의 구매력을 나타내는 실질국민소득(GNI)도 교역조건 악화로 1분기에 전년도 대비 1.8%나 감소하였다. 더구나 진정될 것으로 예상했던 금융기관의 가계연체율이 5월 들어 최고 0.34%P 늘어났으며, 중소기업의 도산 등으로 인해 기업대출의 연체율도 다시 상승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현실과 동떨어진 경기회복론에 정책당국이 의존할 경우 적절한 정책의 시행이 어려울 뿐 아니라 경제주체들의 경기판단도 흐리게 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렇게 객관적으로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화물연대와 철도노조의 파업에 이어 조흥은행의 매각문제와 관련된 정부, 특히 청와대의 대응방식은 사회 경제적 갈등문제를 법과 원칙이라는 시스템에 의해 해결해야 한다는 경제주체들의 바람에 어긋나 경제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얼마 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도 경제원로들은 경제회생을 위해 정부가 법과 원칙을 엄격히 집행하는 한편 정책의 불투명성을 없애 시장불안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문하였다. 즉, 우리가 어쩔 수 없는 해외여건 개선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자체적·내부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흐트러져 있는 경제시스템의 복원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조 파업사태로 번지면서 첨예한 갈등을 초래하고 있는 조흥은행의 매각문제도 원칙적으로 경제정책당국이 경제원리에 따라 예측가능한 방향으로 처리할 문제를 공연히 청와대가 개입하여 노조가 갈등의 정치적인 해결을 요구할 빌미를 제공하였다.
원칙적으로 파업 자체를 비난할 필요는 없지만,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을 정부가 국제입찰을 통해 매각한다는 방침은 구조조정의 원칙과 관련된 문제로 국가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정책당국이 독자생존이 어렵다는 경제적 판단 하에 매각방침을 결정했으면, 이제라도 그러한 판단의 근거를 가지고 일관되게 이해당사자인 노조를 설득해나가야 한다.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금융시장의 상황에 비추어볼 때, 위환위기 이후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조흥은행의 매각을 무조건 반대하는 노조의 논리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하지만 애초에 조흥은행의 부실화가 관치금융으로 인해 초래된 것이었으므로 열악한 근무조건에서도 묵묵히 버텨 온 은행원들이 느끼는 허탈감과 분노를 치유할 수 있는 보완책도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노조도 전산시스템의 마비와 같은 파국적인 위협을 중단하고 고용안정과 근로조건 개선과 같은 실질적인 이득을 확보하기 위한 대화와 타협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조 하 현 연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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