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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금연記]김상대 신한은행 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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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금연記]김상대 신한은행 부행장

입력
2003.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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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2월31일 오후 6시30분, 은행 문을 나서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어두운 저녁 빨간 담배 불빛을 보니 어디에선가 논산 훈련소 시절의 "담배 일발 장전"이라는 소리가 들려 오는 듯 했다. '내나이 마흔여덟, 29년 9개월…. 그래, 피울 만큼 피웠다. 이제 내 인생에 담배는 없다.' 그리고 퇴근 길 그 담배는 내가 피운 마지막 담배가 됐다.담배를 어떻게 해서 배웠고 무슨 이유 때문에 끊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하고 싶지 않다. 나 역시 대학생이 되고 난 후 담배 피우는 친구들이 어른스럽게 보여 흡연을 알게 됐고, 건강이 걱정돼 수 차례 금연 시도 끝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다만 하루 2갑 반 이상 담배를 피우던 시절에는 자면서도 담배를 피우는 꿈을 꿀 정도였고 '도라지'라는 담배의 한약과 유사한 냄새가 하도 좋아 친구들과 동호회까지 만들어 열심히 피웠다는 것만 말해두자.

어쨌든 2002년 1월1일 금연 첫날이 밝았다. '이번에도 3주를 못 넘기겠지' 하는 나약한 마음 때문에 아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사무실 책상에도 재떨이와 담배를 치우지 않았다. 괜히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다가 망신만 당할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나는 코미디언 이주일씨처럼 되지 말아야지'라는 각오로 며칠을 견뎌나갔다.

그러다 1월18일 내게는 천우신조 같은 일이 일어났다. 사무실 벽에 얼굴을 정면으로 부딪혀 이가 3,4개 흔들거리는 큰 부상을 입게 된 것이다. 치과 통원 치료를 무려 3주 동안이나 받아야 할 정도였다. 누구나 경험했겠지만 이 아픈 것만큼 큰 고통은 없다. 담배 생각이고 뭐고 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2월 중순, 갑자기 담배 연기가 역겨워지기 시작한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금연에 성공하니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내게는 중2때부터 낀 안경에 대한 일종의 결벽증이 있다. 30분마다 손수건을 꺼내 렌즈를 닦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담배를 끊고 2개월 정도 지났을까. 어느 날 습관적으로 안경을 닦으려는데 렌즈 표면이 티 하나 없이 깨끗했다. 뿌연 얼룩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얼굴의 땀과 화장품 탓인 줄 알았던 그 얼룩은 바로 담배 연기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올해 1월, 2박3일간의 신한은행 부서장 연수에서 나는 한 지점장에게 호통을 치고 말았다. 전날 과음으로 속이 거북해 이른 새벽 화장실에 가다 보니 복도 구석에서 그 지점장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 은행에서 운동을 아주 열심히 하는 것으로 소문이 난 지점장이었다. "자넨 운동할 자격이 없어. 담배 한 대 피고 조깅할 거라면 아예 담배를 끊고 조깅도 하지말게."

지금도 내 책상 서랍에는 재떨이와 담배 몇 갑이 있다. 물론 내가 피우는 것은 아니고, 손님 접대용의 이른바 객초(客草)다. 술자리에서 담배 한 개비를 들어 코로 냄새를 맡아보면 여전히 구수한 게 좋다. 그러나 다시 피우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 검은 덩어리가 섞여 나오던 가래, 양치질할 때면 어김없이 나오던 구역질….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쥔다. '역시, 담배 끊기를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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