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라의 전 회장을 지냈던 엔리코 프레시는 언젠가 "휠라가 태어난 곳은 이탈리아지만, 꽃을 피운 곳은 한국이다. 전 세계 휠라인들은 휠라 코리아를 보고 배워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휠라 코리아가 휠라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만큼 막강했다. 1991년 자본금 3억원으로 시작한 휠라 코리아는 지난해 매출 2,074억원을 기록할 만큼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휠라 본사를 인수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이 같은 저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휠라 코리아가 이처럼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서 사람들은 무척 궁금해 했다. 심지어 일부 대학에서는 마케팅 강의에 성공사례로 인용하기도 했다. 지금부터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학술적인 분석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경험론에 근거한 것이다.
내 생각에 휠라 코리아가 빠르게 자리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는 사업 초기 본사에서 뭉치 돈을 줬기 때문이다. 의류·신발 사업은 특성상 자금 회수기간이 적어도 6개월은 걸린다. 거꾸로 말하면 6개월은 버틸 자금이 있어야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개인 사업을 하면서 누구보다 이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던 나는 휠라 코리아를 시작하면서 본사에 다소 무리한 제안을 했다. 1년간 방계 회사에 신발을 공급한 대가로 받게 돼 있던 소싱 커미션을 매년 초 미리 달라는 요구였다.
의외로 본사는 쉽게 허락했다. 사업 초기 본사에서 운영 자금조로 들어온 돈이 현찰로만 무려 100만 달러였다. 이 돈 덕분에 휠라 코리아는 운영 자금 걱정을 하지 않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칠 수 있었다.
안정적인 자금 확보와 더불어 휠라 코리아가 성공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원인은 회사 운영 방식의 대대적인 개혁이다. 의류·신발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본사와 대리점의 관계인데, 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사실 휠라 코리아 설립 이전에 20년 가까이 수출전선에서만 뛰었던 내가 처음으로 내수 사업을 시작하자 주변에서는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내가 내수 경험이 없었던 것이 성공 요인이 됐다고 자부한다. 직접 내수 사업을 해본 적은 없지만, 집 사람을 통해서 간접 경험은 해봤다. 내가 한동안 화승에서 근무하던 시절 집 사람이 잠시 화승 나이키 대리점을 운영해봤기 때문이었다.
당시 대리점을 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애로 사항은 본사 직원들 구슬리기였다. 본사 직원들에게 잘못 보이면 한참 잘 팔리는 물건이라도 공급이 끊어지기 일쑤였다. 때문에 대리점 점주들은 본사 직원들에게 수시로 돈을 건넸다.
휠라 신발 에이전시를 하면서 미국식 대리점 운영 방식에 대해 훤히 알고 있었던 나로서는 그런 식의 비합리적 본사―대리점 관계로는 내수 사업에서 결코 성공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본사 직원들과 대리점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겠다고 공표했다. 앞으로 대리점에 부당한 요구를 하는 본사 직원들이 적발될 경우에는 엄중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엄포까지 내렸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었다.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기존의 부패 구조에 익숙해져 있던 본사 직원들의 보이지 않은 저항이 거셌다. 대리점 점주 들도 새로운 시스템을 반기기 보다는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결국 2년간 엄격한 원칙을 적용하고 나서야 새로운 시스템이 자리잡았다. 이 기간 동안 아무리 영업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원칙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있으면 과감하게 잘랐다. 또 본사 직원들이 엉뚱한 돈에 욕심을 품지 않도록 아예 회사에서 월급을 넉넉하게 줬다. 월급도 많이 주지 않으면서 부패구조만 없애라고 하는 것은 모순된 행동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나 지금이나 휠라 코리아 직원들의 월급은 웬만한 대기업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우리 사회에 깊게 자리잡고 있는 부패구조를 뿌리뽑기 위해서는 부패구조가 자리잡을 수 있는 환경부터 없애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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