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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블라디보스토크의 8번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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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블라디보스토크의 8번 버스

입력
2003.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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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분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겪은 일이라는데 믿거나 말거나다. 밤이 되자 러시아 사람들과 기분 좋게 보드카를 몇 잔 꺾으신 이 양반, 신나게 마시다 보니 어느덧 알딸딸하게 취해버렸다. 으슬으슬한 날씨엔 보드카가 딱이었다. 술자리가 파한 뒤 호텔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가기 시작했다.그런데 취해서 그런지 아무리 가도 호텔이 나오질 않았다. 이렇게 멀지 않았는데? 에라 모르겠다. 그만 길가의 벤치에 앉아버린 그 사람. 잠시 후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한참을 졸다가 문득 이상한 예감이 들어 눈을 번쩍 떠보니 멀리서 버스 한 대가 오고 있는 것이었다. 어라? 우이동으로 가는 8번 버스였다. 그 버스로 출퇴근한 게 20년째인 이 우이동 주민, 자기도 모르게 손을 들어 버스를 세웠다. 그러나 우이동행 8번 버스는 냉정하게 그냥 지나가버렸다. 아니 저럴 수가! 분개하다 생각해보니 그곳은 서울이 아니라 블라디보스토크였다.

다음날 그는 그런 한국 중고차들이 전세계를 누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남미에서 '이동 파출소' 버스를 만나 질겁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거 아무리 급해도 글자나 좀 지우고들 타시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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