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세가 한풀 꺾이었다고는 하지만 사스(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는 아직도 무서운 질병이다. 언제 어디서 또 창궐할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한국인이 사스에 감염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가 김치때문이라는 말이 널리 퍼졌다. 과학적으로 명확히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면 어느새 통설 비슷한 것이 되어 버린다. 사스가 극성을 부렸던 중국에서 특히 김치가 많이 팔리고 있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우리 식탁을 중국산 농수산물이 점령하고 있는 것은 이미 오래됐다. 무엇보다 값이 싸기 때문이다. 설이나 추석 등 고유 명절을 맞을 때마다 매번 경험하는 것이지만, 중국산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보면 씁쓸한 감정이 앞서 고개를 돌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김치도 예외가 아니다. 농협중앙회의 자료에 따르면 올들어 김치 완제품이나 절임배추 등을 포함한 중국산 김치류 수입은 4월말까지 2만856톤으로 지난해 연간 수입량인 1만4,510톤을 훨씬 초과했다. 김치 완제품 수입은 더욱 빠른 속도로 증가해 지난해 전체 수입량의 5배를 넘어섰다. 국산 김치의 절반에 불과한 가격이 그 무기다.
■ 일본 시장에서도 중국산 저가 김치에 밀려 국내 업체들이 고전하고 있다. 일본 김치시장에서 국산 김치의 시장 점유율은 1999년 9.6%였으나 2001년에는 6.3%로 떨어졌고, 이 같은 현상은 갈수록 가속화하고 있다. 한국이 '김치 종주국'이라는 점은 세계가 인정하고 있지만, 이제 그러한 국제적 공인이 무색해질 정도로 중국산이 무섭게 밀려들고 있다.
■ 사스는 우리 김치를 세계에 널리 알릴 절호의 기회다. 세계 언론이 사스에 대해 보도할 때마다 김치도 자연스럽게 알려지는데, 이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가격이 문제라면 '김치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은 아니다. 한국산이어야 효과가 있다'는 점을 얼마든지 강조할 수 있다. 70세 나이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아 최고령 등반 기록을 세운 일본의 미우라 유이치로는 "김치찌개로 추위를 이겨냈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가격을 차별화해 고가화 하면 이익도 크다. 얼마 전 주한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한국의 베스트 상품으로 휴대전화가 꼽혔다. 자동차 컴퓨터 등이 그 다음이었으며 김치는 뒤로 밀렸다. 김치를 전 세계인들에게 알릴 방법을 시급히 개발해야 한다. 사스와 같은 좋은 김치 마케팅 기회가 또 올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 우리가 너무 손을 놓고 있는 것 같다.
/이상호 논설위원 sh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