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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패트롤]울산 현대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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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패트롤]울산 현대車

입력
2003.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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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내린 장대비로 도시는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서 일까. 올해 민주노총 하투(夏鬪)의 뇌관으로 지목돼 온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안은 총파업의 꼬투리 하나 감지할 수 없을 만큼 평온했다. 노사 모두는 올해 총파업의 전개 양상에 대한 판단을 유보했다. "아직 시작단계(노조집행부)" "수순을 밟고 있다(회사)" "아무도 못 믿겠다(조합원)"는 삼색 의견 뒤엔 하나같이 "부담스럽다"는 토를 단다. 당연히 협상은 난항이다. "이번이 기회"라고 외치는 비정규직의 움직임도 여느 때와는 다르다. 울산의 평온은 그래서 '태풍의 눈' 이다."얕봤다간 큰 코 다친다."

11일 오후 울산역 광장에서 열린 집회는 초라했다. 전국금속산업연맹 울산투쟁본부 임단투 1만 전진대회에 모인 인원은 고작 600여명. 2만4,000여명의 조합원을 거느린 울산 현대차 노조 관계자는 "매주 수요일이 현대차 노동자를 위한 가정의 날이라 적게 모인 것일 뿐 이제 시작"이라고 했다.

7년째 무분규를 기록하고 있는 현대중공업과 미포 조선 등 다른 사업장의 분위기는 물어보기가 민망할 정도다. "이제 임단투 교섭이다"는 해명 뒤엔 선봉에 선 현대차 노조의 움직임을 지켜보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현대차 노조가 주장하는 '03투쟁'의 3대 핵심 요구는 1. 주40시간 명문화, 2. 비정규직 조직화와 차별철폐, 3. 자본 이동시 노사공동결정 등이다. 기본급 대비 11.01% 임금 인상과 퇴직금 누진제 등도 포함돼 있다. 산별노조 전환도 목표에 들어있다.

사측은 1,2안의 경우 "정부의 입법 일정에 맞춰야 하는 사안이라 개별 기업의 임단협 사항이 아니다"는 입장이고 3안은 "고유의 경영권을 양보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1,2안은 노사 양측 모두 정부가 나서 적당히 선을 그어 주기를 바라는 눈치다.

4월18일 상견례를 시작으로 13일까지 16차례 진행된 임단협 교섭은 사측의 불성실을 문제삼은 노조의 결렬 선언으로 중단됐다. 다음달 2일 총파업을 향한 아슬아슬한 첫발을 내딛은 셈이다. "소모적인 파업은 하지 않고 7월말 휴가 전까지 마무리 짓겠다"는 노조의 공식 입장에는 1998년 1만명 정리해고 이후의 투쟁동력 약화와 정규직-비정규직간, 사업장간 노노(勞勞) 갈등에 따른 집행부의 고민이 깔려있다. 사측은 "기업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팔짱을 끼고 있는 형국이다.

문제는 파업의 강도와 흐름이다. 1,2안 등 노동계의 공동 요구를 떠안고 '대표전'을 치를 수밖에 없는 노사 모두 "어디로 튈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고 걱정했다. 조합원들의 여론도 강약 기류로 흩어져 한데 묶기가 쉽지 않다. "87년 대투쟁 때 와봤나. 우리가 그때 투사들인기라. 아는 놈이 더한다고 노 대통령이 '대기업 노동자 경직성' 카는데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 법 아이가. 쉽게는 안 끝날기라." 박모(43) 씨가 강경 장기화쪽으로 기울자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조합원이 끼어 들었다. "임금 문제도 툭 까놓고 20년 일한 사람(정규직)하고 1년 일한 사람(비정규직)하고 똑 같은 임금 받는 게 좀 그렇다 아이가." 작업 막간에 오가는 대화는 노조 집행부와 사측이 판단을 유보할 만큼 헷갈리고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어둠이 깔리고 선술집마다 술잔이 돌자 조합원들의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기본급 기껏 110만원에 하루도 안 쉬고 잔업이다 특근이다 몸 망가지는 수당으로 버티는데 우리 임금이 제일 많다고 떠드는 의도가 뭐냐." 언론을 향한 불만이 쏟아지는가 하면 "'친노(親勞)' 정부 카는 데 '친노(親盧)'라" 하는 비아냥도 들렸다.

김모(41)씨는 "우리 공장에도 과로로 1명 죽어나갔다. 벌써 9명이라 카대. 노조가 많이 약해졌다고 다들 얕잡아 보믄 큰 코 다칠 기다"라고 했다. "산삼(山三)이라 보믄 될끼다. 두산 부산(화물연대) 어데 쉽게 끝났나. 다음이 울산 차례 아이가." 조합원들은 자신들을 옥죄는 여론이 영 못마땅한 눈치다. '배부른 투쟁'이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서라도 한판 제대로 붙어야 한다는 게 술자리의 결론이었다. 이어 여운을 남기는 말이 던져졌다. "하청(비정규직) 갸들 하는 기 심상치 않아."

하투 최대 복병은 비정규직

12일 밤, 울산현대차 비정규 투쟁위원회(비투위) 기금 마련을 위한 1일 주점. '걸리면 짤린다'는 말처럼 업주 눈치 보느라 집회 한번 나서지 못한 비정규 노동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현대차 비정규직뿐 아니라 조용해보이기만 하던 현대중공업 등의 비정규직들도 모였다.

'임을 위한 행진곡' 등 노동가요를 따라 부르는 손 매무새는 어색했지만 "노동자는 하나"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비정규직의 절규는 애절했다. 같은 일을 하면서 임금도 반쪽, 대우도 반쪽이라는 '반쪽 인생'의 설움을 이 참에 떨쳐버리겠다는 게 한결 같은 목소리다. 장모(32)씨는 "비정규직의 승리를 일군 화물연대 투쟁이 인상 깊었다"며 "오늘 분위기라면 우리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불콰해진 김모(29)씨가 "1,2,3차 비정규직까지 따지면 1만명이 넘을 낍니다. 아닌 말로 우리가 딱 뭉쳐 일 몬 하겠다 하믄 그걸로 끝나는 깁니다. 정규직 노조가 못 하믄 우리가 나설 끼라요"라고 했다. 술자리는 다음날 새벽3시까지 이어졌다.

앞서 비정규직 노조를 설립한 아산 공장 비정규직 노동자의 방문은 힘을 더했고 서울 등지에서 찾아온 대학생들의 방문으로 '노학연대'의 가능성까지 열어뒀다. 6월말 울산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결성을 목표로 하고 있는 비투위 안기호 대표는 "지금까지 힘이 없어 아무도 거들떠 안 봤지만 조직만 갖춰지면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사측도 비정규직이 두렵다. 물밑 협상을 계속하게 될 노조와 달리 비정규직 조직과의 관계 설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조 역시 "비정규직 문제가 이번 하투의 최대 복병"이라고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동선에 따라 파업의 수위가 결정될 거라는 설명이다.

"경기도 안 좋은데 설마…"

위험의 기운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지만 울산 시민들의 반응은 덤덤하다. "매년 하는 긴데요. 별일 있겠습니까. 다른 데는 조용한데 현대차만 그런 것 같아요." 걱정은 오히려 불안한 경제 사정과 맞닿아 있다. 이모(42·여)씨는 "울산은 현대가 절반이라 파업 하믄 장사도 안될 낀데"라고 했다. '현대차 파업→지역경제 붕괴→국가경제 위기' 공식을 강조하는 한 하청업체 업주(50)는 "공장 라인이라도 서면 현대에 목매달고 있는 하청업체는 줄줄이 도산할 것"이라고 했다.

"비도 억수로 오고, 경기도 억수로 안 좋고…"로 운을 뗀 택시기사 김모(50)씨가 최근 상황을 전했다. "화물연대도 설마 하다가 그 난리가 났잖아요. 술들 들어가면 다들 옛날(87년) 얘기해요. 노통 욕도 많이 하고… 여기서 불똥이 튀면 전국으로 삽시간에 퍼질 겁니다. 그전에 손을 써야 할 텐데…."

기우가 아니라면, '현대 폴리스' 하늘의 전운은 큰 비를 쏟아낼 조짐이다.

/울산=고찬유기자 jutdae@hk.co.kr

● 노사쟁점

현대차 노사 양측은 3대 쟁점(주 40시간 근무, 비정규직, 노조경영참여) 중 노조의 경영참여를 가장 풀기 힘든 난제로 보고 있다. 공장 해외 이전 등의 경영 문제에 대한 노조의 참여 요구는 사측 입장에서는 '경영권 침해', 노조측에선 '고용불안정' 요인이라 양쪽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처지다.

나머지 2개안은 올해 노동계 전체 요구 사항이라 결국 노정투쟁이 될 것이라는 계산이고 지금 시점에서 거론하긴 양쪽 모두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산자부가 현대차와 다임러크라이슬러사 간 상용차 합작 문제에 대해 노조의 반대로 표류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부터 노조 경영참여 문제 역시 노정투쟁 양상을 띄고 있다. "노조의 집단이기주의" 등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의 잇단 경고성 발언도 강경 파업 분위기에 적지않은 힘을 실어줬다. 산별 전환 역시 걸림돌이지만 10년 동안 추진된 사안인데다 일반 조합원의 관심도 시큰둥해 큰 변수는 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화물연대 사태로 고무된 현대차 생산직 중 20% 이상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 기간동안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이번 '파업 읽기'의 핵심이다.

/고찬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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