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국인들은 힘들다고 기피하는 일들을 묵묵히 해내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떠난다면 누가 대신 일을 해줍니까."외국인 고용허가제 법안 처리 무산으로 8월말로 출국이 유예됐던 외국인 불법체류자 20여만명의 강제 출국이 눈앞으로 다가온 17일 산업 현장은 할말을 잃었다. 3월 출국 재유예에 앞서 산업현장을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인력대란이 또다시 엄습하리라는 위기감 때문이다. 영세 중소업체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떠난다면 공장 기계를 멈춰야 할 것"이라며 외국인을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는 길을 하루 빨리 터줄 것을 요구했다.
경기 안산시 등의 중소업체들이 밀집한 공단지역은 이날 임박해진 인력대란에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시화공단내 플라스틱성형업체인 P사 대표 조모(48)씨는 "3월에도 강제출국이 임박해지자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공장을 그만두고 은신하는 바람에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며 또다시 반복되는 인력대란을 우려했다. 염색업체 S사 김모(40) 부장은 "외국인을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는 길도 막혀있는 마당에 정부가 외국인 불법체류자 강제 출국을 단행한다면 단속을 앞두고 외국인 노동자들을 숨겨주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노동자 8명을 고용한 양말제조업체인 서울 성수동 H사 최모(43) 대표는 "노숙자들도 일하라면 코웃음을 치는데 외국인 노동자를 모두 내보내야 한다면 공장 문을 닫는 수밖에 없지 않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최씨는 "일손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외국인 노동자들이 영세 중소업체들에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양혜우 소장은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무시한채 정치권이 당리당략에 따라 고용허가제 입법을 무산시킨데 대해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며 "정부는 외국인 불법체류자를 강제출국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