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환 특별검사팀이 대북 비밀송금 의혹사건의 핵심 관계자인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긴급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키로 함으로써 특검 수사는 이제 김대중 전 대통령 조사라는 마지막 관문만 남겨놓게 됐다.김 전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통하는 박씨에 대한 영장 청구는 구(舊) 여권 지지층의 극심한 반발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특검팀으로선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실제 특검팀은 박씨의 사법처리 방식을 놓고 법리와 일반 여론 사이에서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결국 특검팀은 이번 사건을 매듭짓는 데는 박씨에 대한 구속이 불가결하다는 내부 결론에 도달했다. 박씨 사법처리는 이기호 전 경제수석과 이근영 전 산업은행 총재가 구속되면서부터 예견돼 왔다. 대북송금 사건에서 중간 실무역할에 그친 두 이씨의 구속은 윗선의 책임 추궁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박씨가 사법처리를 피해갈 경우 특검팀은 수사 공정성 시비를 피해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박씨를 '희생양'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사건의 정치적 성격상 그 해법 또한 정치적일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전 정권의 '얼굴'격인 박씨의 희생은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박씨에 대한 사법처리를 계기로 특검 수사는 마무리 국면으로 옮겨갈 것이 분명해 보인다. 현재로선 박씨가 마지막 사법처리 케이스가 될 가능성이 높다. 사건의 양대 축인 현대그룹의 경우 대북사업과 국내 경기에 미칠 영향을 고려할 때 정몽헌 회장 등 그룹 수뇌부의 구속 가능성은 썩 높지 않은 상황이다. 박씨가 정치권의 책임을 떠안은 이상 임동원 전 국정원장은 불구속 기소에 그칠 전망이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박씨가 구속된 이후에도 여전히 쟁점으로 남을 것 같다. 박씨는 16일 특검에 출두하면서 "정상회담 협상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면 모두 내 책임"이라며 김 전 대통령에게까지 수사가 확대되는 것을 경계했으나 박씨의 희망대로 상황이 전개될 지는 미지수다. 대북송금과 정상회담 개최가 통치행위의 일환이라 할 때 최종 결정권자였던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대신 박씨의 사법처리로 인해 김 전 대통령이 직접 기소될 가능성은 낮아졌다고 할 수 있다.
특검 수사는 그러나 대북송금의 본질적 성격문제를 언급하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박씨를 포함해 지금까지 사법처리된 인물들의 혐의는 대출 및 송금과정에서 파생된 실정법 위반 정도다. 노무현 대통령은 특검수사 개시 이후 "불법대출 등 실정법 위반은 처벌하되 남북관계의 본질적 측면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여러 차례 피력해 왔다. 적어도 지금까지 특검팀이 보여준 행태는 노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특검팀은 내부토론을 통해 중간수사결과 발표를 생략키로 합의를 본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몇몇 실정법 위반행위를 법원의 판단에 맡기는 것으로 수사를 마무리할 전망이다. 단 수사 막바지에 불거진 현대비자금 문제로 인해 사건이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준택기자 nagne@hk.co.kr
신재연기자 poet333@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