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남성 중에 어느 쪽이 더 오래 살까. 쉬운 문제라 답이 너무 싱겁다. 우리나라는 여성 78세, 남성 71세 정도이니 여성이 평균 7살쯤 더 산다. 전세계적으로도 여성의 수명이 더 긴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여성의 긴 수명은 가끔 악용되어, 마치 남성보다 쉬운(?) 삶을 사는 지표인 것처럼 쓰인다. 고생은 남자가 다하고 여자가 얼마나 편해. 물론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주로 남성이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사정이 좀 달라진다.남성의 짧은 수명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 예로 2001년 발표된 연구의 결과를 보자. 우리나라에서 술과 담배와 같은 주요 사망원인을 없앤 후에 평균수명을 예상해 보면 남자 89.5세, 여자 90.5세로 거의 같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는 어떤 종교의 성직자 부부를 추적한 결과 평균수명이 비슷했다. 결국 남성의 수명이 짧은 것은 순전히 위험을 즐기는(?) 남성들의 탓이라는 소리 아닌가(전쟁도 여기에 들어간다).
또 한가지. 겉보기에 수명이 길다고 하지만, 여성들은 평생을 남성보다 덜 건강한 채로 살아간다. 전세계적인 양상이 비슷하고, 우리나라도 같은 현상을 보인다. 1998년의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서는 여성중 급·만성질환을 가진 사람의 비율이 58.2%로 남성보다 6.6% 정도 높았다.
특히 우울증이나 신경증은 남성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런 질병이 특히 여성에게 많은 것은 아무래도 여성에게 가해지는 '특별한' 사회환경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조금 전문적으로는 성(性)역할의 차이가 주원인이라는 이야기가 많다. 이쯤 되면 여성들이 "병든 채로 오래 살기만 하면 다냐" 하는 볼멘 소리라도 할 법하다.
의료서비스 혜택도 불평등하다. 선진국에서는 여성의 의료이용이 더 많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개발도상국과 후진국은 형편이 다르다. 같은 경제수준을 가진 남성에 비하면 여성의 의료이용이 적다. 우리는 정확한 통계가 없다. 하지만 적어도 빈곤층에서는 사정이 비슷하지 않을까. 더 많이 아픈데도 의료이용이 적다는 것은 분명히 '차별'이다. 게다가 여성은 임신이나 출산과 같은 여성적 기능 때문에 의료를 이용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더 많다. 이걸 빼면 남성과의 의료이용 격차가 더 벌어진다.
안 그래도 호주제니 뭐니 해서 시끄러운데, 양성간의 차이를 일부러 부풀리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건강에도 성평등의 잣대를 한번 들이대어 보자는 것이다. 유난히 양성 평등 의식이 약한 우리 사회다 보니, 어지간히 그런 이야기가 나와도 건강문제는 완전히 관심 밖이 아니던가. 아직 좀 어색하겠지만 이제는 건강의 성차별 문제도 얘깃거리에 한번 올려보자.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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