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유교 사상의 영향을 받은 한국 문화에서 가족은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대다수 한국 사람들은 유럽보다 한국에서 가족의 의미가 더 크다고 생각하는 듯하며 한국에 대한 여러 사회학적 연구도 이런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현대 한국 사회에서 가족은 정말 그처럼 대단한 가치를 갖는가 ?유럽에서도 그렇지만, 한국에서 가족 중 누가 세상을 떠나거나 결혼하거나 아플 때처럼 특별한 상황일 경우 가족간의 유대는 쉽게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견고해 보인다. 그리고 한국에는 가족을 완전히 등지고 혼자 외롭게 사는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적다. 특히 프랑스에서처럼 혼자 기거하거나 보호 시설에서 지내는 노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지표들도 있다. 한국 핵가족의 일상 생활을 살펴보면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지내는 시간이 거의 없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가족보다 직장을 더 중요시 하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의 가정과 비교해 볼 때 함께 모여 식사를 하거나, 주말에 같이 외출하는 경우도 훨씬 드물다.
한국의 법 제도 역시 유럽 국가만큼 가족을 존중하지 않는다. 일례로, 출산 휴직을 보장하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아버지를 위한 육아 휴직은 아직 용어조차 생소하다. 통계 자료를 보면 한국의 출산율은 프랑스나 아일랜드 같은 유럽 국가보다 낮지만 이혼율은 훨씬 높다. 아이를 적게 낳고 쉽게 이혼하는 현 세태는 가족 가치의 하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게다가 몇 년 전부터 두드러지는 사회 현상이 있다. 바로 아이들과 아내를 외국에 보내고 한국에 남아서 돈을 버는 '기러기 아빠 '의 급증이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해외 유학생의 교육비가 무역수지 흑자의 절반에 육박한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할 수 있을지 모르나 이상적이고 화목한 가족의 단면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한국에 살며 살펴본 바로는 현대 한국 사회는 가족의 가치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가족을 위해 지켜야 할 사항은 사회 생활 등을 핑계로 거의 지켜지지 않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에 유럽보다 한국에서 가족의 가치가 더 중요하게 지켜지고 있다는 주장은 한국 사회의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
에릭 비데 프랑스인 홍익대 불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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