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전 노무현 정부는 출범 100일을 맞아 각 언론사로부터 낙제를 겨우 면한 부진한 성적표를 받았다. 아쉬운 것은 정책분야별 평가와 대통령의 리더십 평가에 치중하다 보니 정말로 중요한 항목이 소홀히 취급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참여정부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가 이뤄지고 있는가에 대한 체계적 점검이었다.돌이켜보면 참여정부의 성립은 '정치사회'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역동적 변화에 근거한 것이었다. 지난 대선에서 다수의 국민들은 정치게임의 룰을 정하는 정당, 선거, 유권자로 구성된 정치사회를 변화의 동력이 아니라 변화시켜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였다. 노무현 정부의 출범을 현실화시킨 힘은 붉은 악마, 촛불시위, 노사모 등 자발성에 기초한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였다. 새 정부가 참여정부를 선언한 것 역시 사회변화에 대한 시민의 뜨거운 욕구를 적극 수용하고 시민과 더불어 개혁을 수행하겠다는 의지의 공적인 표현이었다.
그러나 출범 100일이 지난 오늘, 정부를 이끌어갈 국정철학과 원리인 '참여의 기치와 정신'은 거의 실종했다. 정부도, 시민단체도, 학자들도 이제 더 이상 참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1년 전 그토록 적극적이고 열렬하게 서울시청광장을 뒤덮었던 시민들이 불과 반 년만에 회의적인 방관자와 구경꾼으로 돌아선 이유는 뭘까. 원인은 정부에 있다. 노무현 정부는 시민의 자발적 참여의욕을 고무하기는커녕 소진시켰고, 다양한 채널을 제공하기보다는 자꾸만 축소시키고 있다. 시민들은 정치에 참여하고 정책에 관여하고 싶어도 참여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참여정부는 누가, 어떻게, 어디에서, 왜 참여해야 하는지를 설명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청와대 국민참여 수석실은 일선행정기관 업무와 겹치는 국민제안과 민원수렴이라는 일상적 행정업무에 매달리기 보다는 시민참여의 철학과 방법을 체계화하고 청사진을 제시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미국의 린든 존슨 대통령이 '위대한 사회'라는 슬로건을 걸고 거기에 부합하는 포괄적인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추진해 지역사회와 시민운동을 활성화시킨 사례는 참여정부에게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많은 미국인들은 반전, 환경, 소비, 인권의 영역에서 한 단계 도약한 1960년대를 여전히 시민참여와 진보의 시대로 기억하고 있다.
참여정부는 특히 세 가지 차원에서 시민참여를 고무할 제도적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우선 사회적 차원으로 시민단체와의 협력적 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시민단체의 일부 명망가를 정부나 정치권으로 영입하려 애쓸게 아니라 보통시민의 사회적 참여를 고무할 수 있는 종합적인 제도와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두 번째는 정치적 차원으로 참여정부의 중요한 공약인 낡은 정치 청산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당정분리는 대통령이 당의 일상사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선언적 약속이지 정치영역 전반에 대해 대통령이 절대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선거제도, 정치자금과 같이 공공재 성격이 강한 현안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의 정치참여를 활성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책 참여이다. 다툼의 여지가 큰 이슈와 정책에 대해서는 정부, 이해관계자, 공익적 시민단체 간에 실질적 논의가 가능하도록 상시적 협의체를 작동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참여정부가 참여민주주의의 중요한 진전을 가져온 개혁정부로 기록되기를 기원한다.
정 상 호 한양대교수 제3섹터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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