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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전체주의로의 위험한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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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전체주의로의 위험한 질주

입력
2003.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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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없이는 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휴대전화가 없으면 별종 취급을 받거나 공격의 대상이 된다. 사적인 얘기라 송구하지만, 허물 없이 지내는 한 대학교수이자 시인과 이 문제를 놓고 제법 긴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무책임하고 이기적이다. 남이 급히 연락할 필요가 있을 때는 어떻게 하느냐. 내가 귀찮더라도 남들이 많이 사용하면 그 문화에 따르는 것이 맞는 처사다." "주로 집 아니면 직장에 있기 때문에 휴대전화가 필요 없다. 혹시 연락이 안 될 경우는 홀로 있고 싶은 시간이다. 나는 번잡한 현대문명이 싫고 때로는 이에 저항하고 싶다."

물론 휴대전화가 아쉬울 때도 있다. 들판에 나간 농부, 망망대해에서 조업하는 어부처럼 생활에서 필요한 이들도 많다는 점을 인정한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은 아주 사소한 것일 수 있다. 침묵이 허여된 약간의 시간이고 자유다. 전체주의 혐의가 느껴지는 그 물건을 평생 안 가지고 다녔으면 좋겠다.

조지 오웰의 '1984년'은 위험한 미래사회의 도래를 방울뱀의 꼬리처럼 날카롭게 경고하는 소설이다. 전체주의적 풍토와 절대권력의 위험성이 스산하게 그려진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이 기이하고 섬뜩한 문구는 소설의 메시지를 상징하고 압축한다. 가상의 초강국 '오세아니아'의 진리성(眞理省) 건물에 크게 쓰여 있는 궤변이다. '빅 브라더(大兄)'는 텔레스크린이나 도청장치로 대중을 감시하며 전체주의적 이념을 강요한다. 주인공은 절대권력에 저항하여 자유와 진실을 추구하지만 결국 고문에 불복하고 만다.

근래 '1984년'과 흡사하게 불안한 징후들을 계속 목격하게 된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이라크를 침공했고, 다음 대상국으로는 북한이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다. 9·11 테러에 대한 대응이라고는 하나 전쟁은 끊이지 않고, 어느 나라도 초강국 '오세아니아'에 대적하지 못하는 '1984년'의 내용을 닮아가고 있다.

우리의 무의식은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이라는 도착적(倒錯的) 구호에 잠식된 것은 아닌가. 그래서 전쟁 분위기를 거부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도시 건물의 전광판, 버스·지하철까지 쫓아오는 라디오와 TV, 도처에 숨어 있는 감시 카메라, 어디든 들고 다니게 된 휴대전화 등이 '빅 브라더'의 감시수단인 텔레스크린이나 도청장치를 연상케 한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대중사회에서 분자화하는 인간의 고립감을 말한다. 고독하거나 멍청히 지내는 것도 자기성찰에 도움이 된다. 이제 '군중 속의 고독'도 사치가 되었다. 고독할 자유마저 잃었으나 저항감도 느끼지 않는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이 불안감을 주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 제도 역시 전체주의로 건너는 다리 같다. 학생의 동의도 없이 성적이나 건강, 환경 등 그들에 관한 정보가 한데 모아져 국가에 의해 관리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해킹 피해 등은 부차적인 문제다. 절대권력에 의해 개인이 획일적으로 관리되는 세상을 예고하는 조종(弔鐘)과 다름없다. 더군다나 이 제도는 많은 인권침해 요소도 안고 있다. 환경이 좋은 계층에게는 이 제도가 무방할 지 모른다. 그러나 어렵고 소외되어 과거를 감추고 싶은 이들에게는 무섭고 두려운 제도가 된다.

NEIS 시행을 놓고 교단이 분열돼 세력 싸움을 벌이는 모습이 안쓰럽다. 교육의 본질은 행정의 편리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숙한 인격체가 상처 받지 않고 올바르게 크도록 돕는 데 있다. 사회나 국가의 전체주의화를 막는 일 또한 교육의 역할이다. 이 제도에 반대하는 전교조에 공감한다. 그러나 집단 연가투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민주적 절차를 중시하는 것 역시 교육이기 때문이다.

박 래 부 논설위원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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