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하상 퇴적물은 서울 600년의 생활사를 간직하고 있다."7월1일 청계고가도로 철거와 함께 시작될 청계천 복원공사를 앞두고 하상퇴적물을 치밀하게 발굴·조사해야 한다는 의견이 고고학계와 시민단체에서 제기되고 있다. 음식물 쓰레기와 다양한 생활용품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도심의 생활 하천은 고고학·인류학적 연구가치가 매우 높아 복원공사에 앞서 충분한 발굴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고고학계는 청계천이 조선 태종 6년(1406년)에 인공 하천으로 조성된 후 몇 차례 준설공사가 이뤄졌지만 퇴적물이 잘 보존된 곳을 찾으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실제로 도시 발굴의 성패가 하수구에서 결정된다고 할 만큼 '하수구 고고학'은 중요한 분야라고 주장한다. 음식물 찌꺼기와 쓰레기 등은 당시의 섭생과 영양 및 질병, 식품가공처리 기술까지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배기동 한양대 박물관장(문화재위원)은 "청계천을 통해 서울의 묻혀진 역사를 파악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며 "모든 지점에 대한 발굴은 어렵겠지만 부분적으로라도 시굴과 발굴을 실시해, 층위별로 수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시는 1900년대 초 도시가 지진으로 파괴된 후 재건하면서 시내 하천과 하수도를 발굴, 버클리대 인류학 박물관에 200만점에 이르는 자료를 보관해 두었다"며 "고고학자와 인류학자들이 집중적으로 이 자료를 조사하고 있다"고 예를 들었다.
최정필 세종대 교수도 "청계천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600년 조선사의 본거지"라며 본격적 발굴 조사를 촉구했다. 그는 "물이 흐르는 하상 토질에서는 유기물이 쉽게 상하지 않는다"며 "뻘층을 걷어내 물 체질을 하면 금반지, 은비녀, 엽전은 물론 유기된 인골까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도의 모헨조다로 유적은 하수구 발굴로 도시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었던 반면 신라 고도 경주는 현재 하수구를 찾지 못해 왕성의 면모가 확실치 않다고 덧붙였다. 강찬석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은 "상판을 제거한 후 조사를 하면 장마에 퇴적물이 휩쓸려갈 우려가 있다"며 복원 공사 전에 하상퇴적물 발굴을 포함한 전면적 재조사를 요구했다.
고고학자들은 그 동안 이뤄진 준설 횟수와 정도가 문제이지만 지금까지는 모래를 걷어내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퇴적층이 크게 훼손되지 않은 것으로 보았다. 명지대 부설 한국건축문화연구소가 최근 작성한 청계천 지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영조 36년(1760년)에 대대적 준설 공사를 하는 등 여러 차례 강바닥을 파냈지만 "20세기 유물 대신 조선 중기 이후의 분청사기, 자기편 등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하상이 침식되면서 당시의 퇴적층 상태로 내려간 것으로 추측된다"고 밝혀 발굴 필요성을 시인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발굴 조사가 이뤄질 경우 상당한 예산과 기간이 소요돼 청계천 복원공사 지연의 새로운 요인이 될 수 있어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관계자는 "27일 문화재위원회가 발굴 범위와 방식을 결정하면 그에 따라야 하겠지만 하상 퇴적물 위주의 발굴은 어렵지 않겠느냐"고 난색을 표했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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