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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수구와 보수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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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수구와 보수의 차이

입력
2003.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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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대선 당시 국민당 후보로 출마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공산당 합법화를 주장하고 나서 논쟁을 불러 일으킨 바 있다. 우리보다 훨씬 못한 필리핀도 공산당을 합법화했는데 우리가 무엇이 무서워 합법화하지 못하느냐는 주장이었다.11년이 지난 현재 노무현 대통령의 공산당 관련 발언으로 한나라당이 노 대통령의 탄핵을 검토하겠다고 반발하는 등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노 대통령이 일본에서 일본공산당 관계자들과 만나 "한국에서도 공산당 활동이 허용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한나라당은 "헌법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자신의 책무를 저버리고자 한,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망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 그동안 노 대통령의 여러 부적절했던 발언과는 달리 무조건 비판적으로 대할 문제만은 아니다. 물론 김태식 민주당전당대회 의장의 비판대로, 노 대통령은 학자가 아니고, 따라서 심포지엄을 다녀온 게 아니었다. 또 국민 정서, 특히 50∼60대 냉전세대의 정서를 고려할 때 대통령이 공산당 활동 허용 운운한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발언을 평가할 때 세 가지 정도를 고려해야 한다.

우선 발언의 맥락이다. 노 대통령이 학자가 아니고 일본에 심포지엄을 갔던 것은 아니지만 동시에 문제의 발언은 국내에서 한 것이 아니라 일본공산당 관계자를 만나 한 외교적 발언이라는 사실을 고려해주어야 한다. 둘째, 노 대통령의 발언을 공산당 활동 허용발언으로 해석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한국에서도 공산당 활동이 허용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반드시 '따라서 공산당 활동을 허용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노 대통령의 발언은 '공산당 활동이 허용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지만, 우리의 경우 분단 때문에 공산당 활동을 허용할 수 없고 그 결과 한국이 완전한 민주주의가 되는 데에는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발언을 공산당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해해 비판하는 것은 엄청난 논리의 비약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도 공산당 활동이 허용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는 발언 자체에 대한 평가이다. 이 발언은 한국이 공산당 활동을 허용하지 않고 있어 아직도 완전한 민주주의, 정확히 표현해 완전한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정치학적으로 볼 때, 이는 정확히 맞는 이야기다. 표준적인 민주주의 저서들은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사상과 결사, 표현의 자유의 보장이며 아무리 그것이 잘못된 사상이라고 하더라도 공산주의와 같은 특정한 사상을 금지하는 한 그 체제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쓰고 있다. 즉, 자유민주주의는 단순히 냉전반공주의가 아니다.

사실 한나라당의 생각과 달리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파괴하고 있는 것은 노 대통령의 발언이 아니라 오히려 공산주의와 같은 특정한 정치사상을 금지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이다. 따라서 유엔의 권유처럼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공산주의까지도 허용할 때 한국도 완전한 자유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

지난 대선 패배 후 한나라당은 수구의 이미지를 불식하고 합리적 보수를 추구하고자 노력해왔다. 반갑고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수구와 합리적 보수의 결정적인 차이는 전자의 경우 자유민주주의를 냉전반공주의로 오해해 자신과 다른 사상을 억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합리적 보수의 경우 공산주의에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허용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수구인가, 합리적 보수인가, 선택은 한나라당의 몫이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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