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음반에 대한 기호만큼 개인의 가치관과 취향을 잘 드러내는 지표도 드물다. 강남에서는 유행에 민감한, 소위 트렌디(Trendy)한 음악이 인기를 끈다. 특히 압구정동, 청담동 등에서는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풍이 유행을 선도한다. 하우스, 테크노 등의 전자음악과 이를 기반으로 한 레이브 파티가 유행의 키워드다. 재즈의 경우, 강북은 마일즈 데이비즈 류의 인지도 있는 음반이, 강남에서는 퓨전이나 월드비트가 가미된 것 혹은 애시드(Acid) 재즈가 주류를 이룬다.국내 가수도 강남형과 강북형 가수로 나뉜다. 영국 모던락 스타일과 힙합 등으로 무장한 리쌍, 김진표, 엠씨 스나이퍼, 러브 홀릭, 롤러코스터 등의 노래가 전형적인 강남형이다. 강남형과 강북형을 나누는 기준은 바로 카세트 테이프와 CD 판매량의 비율이다. 구매력이 높은 강남지역에서는 CD 판매량이 월등히 높다. 롤러코스터는 음반의 80%가 CD로 판매돼 강남형, 카세트와 CD 판매량이 비슷한 마야, 김건모, 조성모, 코요태 등은 강북형 가수라고 할 수 있다.
일반 음반의 두 세배 가격인 수입음반 시장도 강남권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힙합에서는 에미넴과 50센트, R&B에서는 크렉 데이빗, 넬리, 팝에서는 호텔 코스테 시리즈가 인기다. 같은 장르의 음악이라도 강남권에서는 재미동포 출신 가수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훈석 메주뮤직 대표는 "힙합 장르에서는 국내파 DJ DOC가 강북, 해외파인 드렁큰 타이거는 강남에서 각각 강세를 보이고 R&B 장르 역시 국내파인 박화요비, 린애, 양파, 이기찬보다 박정현, 에즈 원, 제이 앤, 김조한 등 해외파가 강남에서 더 인기"라고 말했다.
영화 / 영화 배급 전문가들은 '조폭 마누라'류의 스토리와 액션, 웃음이 '확실한' 영화가 강북형인 반면, '10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 등 로맨틱 코미디나 '니모를 찾아서'같은 애니메이션이 강남형 영화라고 단정한다. '강남은 지적 허영심이 있는 영화, 강북은 완성도는 떨어져도 화끈한 영화가 잘 된다'는 게 경험에 근거한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의 흥행 성적표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아트 영화 팬들이 좋아하는 영화 '파 프롬 헤븐'(감독 토드 헤인즈)의 경우 강북 시네코아에서는 7일간 2,696명, 강남 메가박스에서는 14일간 4,539명이 보았다. 여기까지는 강남북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강북 주변부의 '날개극장'으로 가면 사정이 다르다. 상봉시네마는 개봉 3일만에 막을 내렸고, 관객은 모두 28명. 랜드시네마 씨네월드 등 강북 극장은 강남 오즈 극장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액션 블록버스터 '튜브'도 강남북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는 영화다. MMC, 서울극장 등 강북 극장에서는 하루 400∼650명의 관객이 든 반면, 강남 씨네씨티에서는 200명의 관객도 채 들지 않았고, 메가박스에서는 경쟁작 중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때문에 영화사들은 아트 성향의 영화는 주로 강남 지역 관객을 상대로 마케팅을 벌이는 반면, 액션이나 코미디 영화는 강북 지역 극장을 중심으로 치열한 극장 확보전에 나서고 있다.
방송 / 성별, 소득수준, 사회문화적 성향 등에 따라 TV채널 선택을 달리 하는 이른바 '채널 디바이드(Channel Divide)' 현상이 강남북을 뚜렷하게 가르고 있다.
최근 20·30대를 중심으로 패션과 유행을 선도하는 '섹스 앤 더 시티', '앨리의 사랑만들기', '프렌즈' 같은 위성·케이블 TV의 인기 외화 시리즈는 강남에서 먼저 붐이 일기 시작했다. 다음카페 '섹스 앤드 시티' 의 부(副) 운영자인 최성원(29·여)씨는 "전체 회원 1만5,000여명의 강남 대 강북 비율은 7대 3 정도"라며 "특히 해외유학이나 어학연수를 다녀온 사람들이 많은 강남에서 외화 프로그램의 수요가 훨씬 크다"고 말했다. 이 드라마의 최신 시리즈를 방영 중인 캐치온(유료)의 경우 서울지역 가입자 9만3,000여 가구(케이블TV 기본형 가입자 기준) 중 강남의 '빅3' 지역(강남·서초·송파구) 가입자가 46%에 달한다. '섹스 앤 더 시티'의 경우 주인공이 사용하는 '마놀로 블라니크', '지미 추', '마크 제이콥스' 같은 브랜드의 매장이 방송 후 강남권에 생기는 현상도 눈에 띈다.
또 강남에서는 증권, 골프 채널과 CNN NHK 디즈니 등 해외재전송 채널 선호도가 높은 반면, 강북에서는 고른 인기를 얻고 있는 대중적 채널 외에는 특징적 시청 패턴이 없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견해다. SBS골프 채널은 아예 "강남의 부유층이 주요 마케팅 대상"이라고 공언한다. 하루 6시간의 한글자막 방송을 내보내는 디즈니나 니켈로디온 같은 어린이 대상 영어방송 채널의 경우 "영어교육을 위해 자막을 없애달라"는 강남 주민과 반대로 "내용 이해가 안 되니 자막 시간을 늘려달라"는 강북 주민의 민원이 맞서는 일도 빚어지고 있다.
개인의 기호가 아니더라도 강북은 강남에 비해 위성·케이블 TV 등 뉴미디어 매체에 대한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방송위원회가 발표한 '2002년 방송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강남구의 케이블TV 가입자 중 98.5%가 70여 개의 채널을 볼 수 있는 기본형에 가입한 반면, 강북의 은평구는 기본형 가입자가 7.6%에 불과하다. 강북 주민들은 대부분 채널 수가 40여 개인 보급형을 선호한다. 위성방송도 강남 송파 서초구가 각각 가입자수 1,2,3위를 차지한 것으로 드러나 심각한 지역 격차를 보였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김영화기자 yaaho@hk.co.kr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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