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9월21일자 한국일보에 실린 인터뷰 기사를 보니 당시 서른살이던 조용필(53)은 "딱 3년 뒤에 가요계를 떠날 생각"이라고 말했다. '창밖의 여자'로 공전의 히트를 치며 만인의 '오빠'로 자리잡았던 때였다. "대중 예능인들이란 인기의 정상에 있을 때 그를 좋아하는 대중에게 짧고 굵게 봉사한 뒤 스스로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 평소의 생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당시 그는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3년 하고도 20년이 흐른 지금 여전히 노래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조용필은 맨 나중에 나오는 법이지'라는 말처럼 그는 여전히 만인의 스타로 굵고도 길게 대중곁을 지키고 있다.
8월30일 서울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리는 데뷔 35주년 기념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그에게 이제 "은퇴는 언제?"라는 질문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의 말처럼 그에게 "노래는 공기처럼 당연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때 아닌 감기에 걸렸다는 그는 "약 먹고 어제 종일 잤더니 좀 나아졌다"며 입을 열었다. 요즘 생활에 대해서는 "집과 사무실을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을 하고 있고 머리 속에는 공연에 대한 구상으로 가득 차 있다"고 했다. 집안 일 봐 주는 아줌마가 아침에 왔다가 오후 5시면 돌아가고, 하루 종일 위성방송의 음악 채널을 틀어 놓고, 심란할 때는 소파 깊숙하게 몸을 맡기고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고 했다. 가끔 팬들이 경비실에 맡겨 둔 선물을 풀어보기도 하고 시간이 날 때면 아내의 묘소를 찾는다. 공연 준비 때문에 바빠지자 그는 아내 무덤 곁에 꽃나무를 심었다. "꽃이 참 금세 시들더라구요. 예전처럼 자주 못 가게 돼 꽃나무 몇 그루를 아내 곁이랑 집에 나눠 심었습니다"라고 한다.
데뷔 35주년 공연에 대해 그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무대가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뮤지컬 '명성황후'를 연출한 윤호진 감독의 총 지휘로 3,000여명의 스태프가 동원되며 'The History'라는 공연 제목에 걸맞게 조용필의 음악 인생을 총정리하는 자리로 만들어진다. 아직 홍보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4만5,000여 좌석 중 3분의 1이 예매됐다. "저의 35년 음악 인생을 펼쳐 보이는 자리입니다. 현재에서 시작해 과거로 돌아갔다가 다시 현재로 오는 식의 구성이 될 것 같아요. 야외지만 최대한 관객과 호흡할 수 있는 독특한 무대를 설치할 생각입니다." 제대로 공연을 즐기지 못할 '시야 장애석 5,000석'은 아예 뺐다. 그만큼 그의 공연을 볼 수 있는 사람수가 줄겠지만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보여 주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다. 68년부터 지금까지, 그와 함께 한 대중음악의 역사가 한눈에 펼쳐질 이번 공연에는 후배 가수들과의 무대도 마련한다. 신승훈, 김건모, 서태지와 아이들, 휘성 등 그를 '존경하는 선배'로 꼽아 온 수 많은 후배 가수 가운데 누가 선택될지는 아직 모른다.
8월15일께 18집 앨범도 발표할 예정이다. 예상과 달리 아내에 대한 추모곡은 만들지 않을 생각이다. "그 노래를 부를 때마다 아내 생각이 날 것 아닙니까. 이제 더 이상 아내에 대한 추억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에요. 이제 정말 보내야죠."
35년을 노래해 왔지만 "한번도 천재적인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털어 놓았다. 대신 인기의 비결은 끊임 없는 연습이라고 말했다. "노래는 쉬면 안 되는 거더라구요. 수십 년간 노래 했지만 요즘도 잠시만 쉬면 노래가 제대로 안 나오고 목소리에 탄력이 없어져요."
그는 "화려한 무대에 서면 나만 세월을 먹은 것 같아 조금 쓸쓸하다"는 말도 했다. "무대 아래의 환호성은 35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요. 나이는 먹었어도 팬들의 마음만은 언제나 청춘인 것 같아 부럽기도 하죠. 그래서 나만 나이 든 것 같은 느낌입니다." 하지만 팬들이 보기에는 정반대다. 무대위의 그는 여전히 기운이 펄펄 넘치는 영원한 오빠이기 때문이다.공연문의 (02)522―9933
/최지향기자 misty@hk.co.kr
사진 박서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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