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라 코리아의 본사 인수에 대해 어떤 신문은 "인생 최고의 빅 딜"이라고 표현했지만, 본사 인수는 결코 빅 딜이 아니다. 내 인생에서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 것에 불과하다. 사실 요즘처럼 흥분된 하루 하루를 보낸 적도 별로 없다.인수를 통해 본사 지분 5% 정도를 확보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많은 사람들이 내게 "엄청난 돈 방석에 앉았다"며 부러움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5%의 지분이 앞으로 어떤 가치를 지닐지는 몰라도, 내가 평생 벌었던 돈보다는 훨씬 많을 것 같다.
하지만 요즘 내가 짜릿함을 느끼는 것은 돈 때문이 아니다. 돈이라면 나는 이미 벌 만큼 벌었다. 나를 흥분 시키는 것은 내게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휠라 브랜드의 아시아 시장 공략. 이것이 앞으로 내게 주어진 과제다. 앞서 밝힌대로 나는 휠라 아시아 회장을 맡았기 때문에 휠라 코리아 경영에서는 물러나게 된다. 이미 조선묵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키는 인사를 단행했다.
이 달 말까지 아시아 조직 구성을 마무리하고 연내에 아웃소싱 업무와 지사별 업무를 조정해야 하는 등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과제는 중국, 베트남, 태국 등 미개척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중국 시장을 개척하는데 사활을 걸려고 한다. 지난해 2,074억원이었던 휠라 코리아 매출을 2008년까지 7,000억원이 넘는 수준으로 키워나가겠다고 장담한 것도 사실은 중국 시장을 염두에 둔 것이다.
앞으로 사흘에 이틀 정도는 중국이나 홍콩을 돌아다닐 각오를 하고 있다. 집 사람이 또 "무슨 출장이 이리도 잦냐"고 핀잔을 놓을 지도 모르겠다. 휠라 코리아는 물론, 나도 이제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
인수 과정의 전모가 언론을 통해 알려진 후 많은 사람들이 내게 격려의 전화를 했다. 대부분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아마도 본사 인수가 자금은 부족하지만, 실무 경험이 풍부한 경영진들이 투자자를 끌어들여 인수하는 '경영자 인수방식(Management Buy Out)'이라는 다소 독특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나도 흐뭇하다. 내가 사람들에게 꿈을 줄 수 있다면 그보다 보람된 일이 있을까. 더구나 젊은이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사실 휠라 코리아 설립도 돈보다는 능력을 인정 받아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휠라 본사는 본사와 내가 55대 45대 지분으로 합작해서 휠라 코리아를 세울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내게는 돈이 없었다. 휠라 에이전시로 번 돈은 라인실업 운영자금으로 전부 들어갔다.
내가 돈이 없다는 것을 알자 본사는 다시 수정제안을 해왔다. 10% 지분만 투자하되 투자 자금도 나중에 월급에서 깎아가는 방식으로 하자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돈 한푼 내지 않고 휠라 코리아를 출범시켰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휠라 코리아는 출범 첫해부터 엄청난 실적을 올렸다. 한때는 대리점에 손님이 너무 많이 몰려 줄을 서서 사가기도 했고, 물건이 동나자 미리 돈을 맡겨놓는 손님도 있었다.
90년대 휠라 코리아의 매출 증가액은 매년 200∼250%에 이르렀다. 회사가 커가자 자연스럽게 내 몸값도 올라갔다. 처음 연봉 100만 달러로 시작했고 98년에는 250만 달러까지 올라갔다.
물론 몸값이 올라갈수록 휠라 본사는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홍콩, 중국 등 아시아 시장 전체를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도록 들들 볶았다. 사실 연봉이 많은 만큼 더 시달렸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휠라 코리아는 어떻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가 가장 많이 들어온다는 한국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을까. 이제 휠라 코리아의 성공비결을 이야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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