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미혼의 1남1여와 사는 60대 중반 주부인데, 남편은 직장에 나가있는 시간이 더 많아 집은 하숙집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또 아들은 대학원에 다니고, 해외근무까지 했던 딸도 직장생활에 빠져 다반사로 오밤중에 들어옵니다. 이러다 보니 가정에서의 '나'라는 존재는 집 지키는 뭣 모양 대부분 시간을 혼자 지내니 우울증도 생깁니다.저 역시 결혼 전 직장생활을 했었지만 이제는 가족들 무관심 속에 혼자만 신음하다보니 '나 없는 살림, 어디 한번 해보아라'는 제 존재가치 과시욕구가 강하게 듭니다. '도대체 가정은 무엇이며 주부는 또 무엇인가'라는 회의가 드는데 이런 심사를 어떻게 다스리지요? /서울 신길동 김씨
문맥으로 보아 댁 부부는 남보다 십 년 늦게 가정을 시작하신 분 같군요. 저녁식사를 준비한 채 제각기 다른 시간에 뿔뿔이 귀가하는 세 식구를 우두커니 기다리시는 60대 댁 모습을 상상하니 안쓰럽습니다.
바깥양반은 그 나이에도 그를 필요로 하는 직장이 있고, 그나마도 바쁘게 지내신다 하니 특수전문직이거나 개인사업자이신 듯 하고 여기저기 친구들이 많은 유능하고 건강하고 연륜을 덜 타시는 분이실 것입니다. 똘똘한 그 분은 열심히 일함으로써 초로기(初老期) 적응을 잘 하시고 있군요. 두 자녀분은 그 나이와 위치에 부합해 활발하고 정상적인 사회생활과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혼청춘시절에는 집안보다 바깥생활이 더 중요하지요. 그러니 세 바깥귀신을 두신 댁 같은 처지에서는 댁이 중심이 된 단란한 핵가족생활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집안귀신 모범주부라는 자화상에서 그만 벗어나시지요. 일주 두 번은 파출부를 불러 청소와 세탁, 다림질이나 힘쓰는 일을 맡기시고, 요가학원이나 헬스클럽을 찾으십시오. 소원했던 동창생들이나 옛친구들을 다시 찾아 모임마다 참석해보십시오. 일주 한 두 번은 저녁식사도 준비하지 마시고 다들 먹고 들어오게 하시되 만일을 위해 근처 배달 음식점 전화번호 한 둘을 식탁 위에 올려놓아 두신 뒤에 혼자 야간외출을 나가시지요. 관심을 갖고 보면 댁 연세로도 여자 혼자나 두엇이 저녁에 즐길 거리가 무척 많습니다. 그리고 컴퓨터를 배우십시오. 적성에 맞으실 것이며, 거기에서 새 세계가 열릴 수 있습니다.
이제 돈을 자신을 위해서도 좀 쓰십시오. 그래야 세 바깥귀신이 거꾸로 존경을 합니다. 이렇게 몇 년을 보내신다면 그동안 자녀들이 출가하고 남편도 기운이 빠져 직장도 놓고 돌아와 아내만을 찾겠지요.
/서울대의대 신경정신과 명예교수 dycho@dych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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