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선 요즘 술래잡기가 한창이다. 납치당했다 풀려난 연예인 A양이누구냐로 한때 시끄럽더니 이번엔 남자에게 3년동안 폭행당한 개그우먼 L양이 화제다.묘한 것은 피해자들은 신분이 드러날까봐 전전긍긍인 반면 가해자들은 이러쿵 저러쿵 자기 주장이 많다는 점이다. 어쩐지 익숙하게 느껴지는 정황이다. 앗, 이건, 비디오 사건의 주인공인 O양과 B양의 또 다른 버전? 알몸사진이 있네 없네, 폭행남과 동거를 했네 안했네 등등 A양과 L양은 미혼여성이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무거운 루머에 휩싸여 있다.
O양, B양, A양, L양 경우의 공통분모를 찾아봤다. 우선 여성, 미혼, 연예인, 그리고 이른바 ‘공인’. 당한 사건도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점에서 엇비슷하다. 공인의 사생활은 이미 사생활이아니라는 게 우리의 우격다짐같은 통념이다. 특히 미모의, 여성, 연예인이연루된 사건은 모든 이들이 즐겨 찾는 인기 메뉴이다.
한사코 자신이 사건의 주인공임을 부인하는 A양을 두고 어떤 이는 말했다. 왜 떳떳하게 나와 당당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느냐고. A양의 대답은? 아마도 이랬으리라. “날 이렇게 만든 건 너희들이야. 날 제발 내버려 둬.
난 피해자일 뿐이라구.”지난해 6월의 영웅, 히딩크가 보여줬던 또하나의 놀라움은 사생활에 대한그의 단호하기까지 한 방어였다. 축구에 대해선 별 말을 다 들어도 까딱안했던 그였지만 애인 엘리자베스 얘기만 나오면 기자에게 가벼운 폭력도마다하지 않았다. ‘공적인 나’와 ‘사적인 나’를 칼같이 구분하는 히딩크가 그땐 좀 낯설었다. 뭐 저렇게까지 할 것 있나, 애인 얘기 좀 해달라는데, 다 자기한테 관심이 많아서 그런거지….
대통령이나 장관이 말실수라도 하면 금새 ‘공사의 구분도 못한다’고 비난하면서도 정작 우리는 공사 구분없는 사고 방식에 너무나도 익숙해 있는건 아닌지.지난해 국무총리 서리에 임명되었다 낙마한 장상씨는 언론이 마음대로 파헤쳐 놓은 자신의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느날 우리 아들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 여자 누구냐, 되게 파렴치하네.’ 아이들이깜짝 놀라면서 ‘어머니, 이건 어머니예요’라고 말했다. ‘알어, 보도를보면 정말 파렴치한 것 같아서…’라고 나는 답하며 씁쓰레하게 웃었다.”‘공인’이 뭐길래…라는 탄식이 저절로 나오는 대목이다. 요즘 같아선 정말 ‘공인’으로 구분되지 않는 신분이 고마울 따름이다.
이덕규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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