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은 15일 방영된 KBS―TV의 '일요스페셜'에서 남북정상회담의 비화를 소개하고 스스로 6·15 선언의 의미를 되새겼다. 그는 "여보쇼, 노인인 내가 왔는데 젊은 당신인 안 온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 약속을 받아냈다고 말했다. 다음은 소설가 김주영씨와 가진 일문일답.― 6·15 정상회담 3주년을 맞은 소감은.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 벅찬 감격을 금할 수 없다. 사실 그 때 큰 모험을 했다. 북측과 사전에 공동성명 발표가 합의가 안됐다. 여기서 초안을 보냈지만, 북한은 '만나면 잘된다'는 얘기만 했다. 김정일 위원장이 공항에 나오느냐고 물어도 '모르겠다'는 등 확실한 게 없었다. 또 북측은 '김일성릉에 참배해라. 세계의 정상이 다 했는데, 남한 대통령도 해야 할 것 아니냐'고 했다. 내가 '국민들 정서를 봐서 할 수가 없다'고 했더니, '그러면 오지 말라'고 하더라. 이 문제는 결국 김 위원장이 안 하도록 결론을 내렸다. 순안 공항에 김 위원장이 서 있어 비로소 출영사실을 알았다. 김 위원장과 차를 같이 타고 시내로 가는데 60만 대군중이 열광적으로 환영했다. 재미있던 것은 군중들이 '김대중' 말은 한마디도 안하고, 전부 '김정일'만 외친 것이다. 참 우습다는 생각을 했다. 나중에는 군중들이 그냥 '만세'만 하고 '김정일'은 연호하지 않더라. "
―김 위원장과 차를 타고 평양 시내로 가면서 나눈 얘기는.
"군중에게 손을 흔드느라 얘기할 짬이 없었다. 처음 만나 뭐가 잘못될지 모르는 상황에다, 서로 긴장한 탓에 얘기를 나눌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끝나고 귀가할 때는 '이산가족 상봉을 빨리 결정해주면, 나도 장기수 북한 송환을 협력해주겠다. 당신이 먼저 하라. 거기서부터 물꼬를 트자'는 얘기를 했다. "
―정상회담 뒷얘기는.
"김정일 초대소에 내가 있었다. 그런데 김 위원장이 대통령께서 연로하니 자기가 와서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했다. 회담에서 김 위원장에게 '당신은 지금 북을 통치하고 있고 나는 남쪽을 대표하고 있다. 우리 둘이 맘 한 번 잘못 먹으면 민족이 공멸한다. 우리가 바른 민족적 양심을 갖고 서로 화해, 협력해나가면 우리 민족과 후손들은 축복받을 것이다. 어느쪽을 선택하겠느냐. 당신네는 남쪽을 적화한다는 생각을 버려라. 그러면 전쟁 밖에 없다. 동시에 우리도 북한을 흡수통일하겠다는 생각을 안하겠다. 할 능력도 없다'고 했다. 그 때 북침의사가 없다는 것을 김 위원장이 믿게 된 것 같다. 공동선언을 만드는데도 난관이 있었다. 서울 답방에 대해 약속을 하지 않은 것이다. 한 시간 이상 끌어도 얘기가 안됐다. 내가 마지막으로 김 위원장에게 '여보쇼, 나는 김 위원장이 부친을 존경하고 노인을 대접하는 걸로 안다. 노인인 내가 여길 왔는데 나보다 젊은 당신이 안 온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하니까, 결국 가겠다고 했다. 또 서명을 하는데도 김 위원장이 실무자 레벨에서 하고, 우리는 하지 말자고 하더라. 그래서 '당신과 내가 회담을 해서 내는 성명을 어찌 우리들이 안해서 되겠느냐'며 한참을 옥신각신했다."
―6·15 선언의 의의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민족과 남북이 앞으로 나아갈 이정표, 즉 로드맵을 만들었다고 본다. 첫째, 남북간 긴장 완화와 평화적 해결이 합의됐다. 둘째 자주적으로 통일하되, 북한의 과거 연방제를 철회하고 연합제와 상통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합의가 이뤄졌다. 셋째,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교류를 심화시켰다. 또 이전엔 이산가족이 200명 정도 만났다. 그 후 5,000명이 남북을 왕래하며 만나고 있다. 우리 경제에도 크게 기여했다. 과거 50년간 국내 외국투자 총액이 246억원인데, 5년 동안 600억원이었다. 경의선 개성공단 육로관광 등 경협도 늘어났다. 결국 이런 것은 휴전선을 가로지른 것인 만큼 베를린 장벽 붕괴와 같은 의미가 있다. 우리에 대한 북한 민심이 적대심 일변도에서 긍정, 우호 방향으로 돌아선 것도 큰 의미다. 아쉬운 것은 경의선 개성공단 등을 합의해놓고 실천을 끌어 큰 성과를 올리지 못한 점이다."
/박정철기자 parkjc@hk.co.kr
■ 북한 관련 언급
김대중 전 대통령은 15일 특별대담을 통해 "북한은 먼저 핵을 포기하고,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검증을 받아야 하며, 미국은 북한의 안전을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북핵 문제의 해법을 제시했다.
그는 "북한은 지금 체면이나 벼랑 끝 전술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점과 클린턴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현실에 적응하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 핵이 아무리 있어봤자 미국 핵 앞에서는 어린애 장난감이며 어떻게 얘기가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김 전 대통령은 미 클린턴 행정부 당시 북·미 대화 성사 과정의 비화도 소개했다. "남북정상회담때 김정일 위원장에게 '당신네가 살길은 안보와 경제 회생인데 그것을 해 줄 나라는 세상에서 미국밖에 없다. 때문에 아무리 아니꼽더라도 당신네 국익을 위해서 미국과 관계 개선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김 위원장이 받아들였고, 내가 클린턴 대통령한테 다시 전해서 북미 대화가 시작됐다"는 내용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이어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북한과 대화하자고 적극적으로 나왔지만 북한이 이를 이용하지 못했다"면서 "결국 버티기 전술과 벼랑 끝 전술이 북한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북한이 (남한과) 약속을 빨리빨리 이행했으면 철의 실크로드가 형성되고 개성공단에서 물자가 나왔을 텐데 (북한이) 시간을 놓쳐 남쪽 사람을 궁지에 몰리게 하고 강경세력에게는 반대 구실을 줬다"고 비판했다.
그는 "6·15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남한에 온다고 했으면 당연히 왔어야 했고, 못 오면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도 김정일 위원장한테 '당신 남쪽에 가야 한다. 어떻게 해서 상대방이 왔는데 안 가는 법이 있느냐'고 충고했단 말을 江 전 주석으로부터 들었다"며 "헬슨 스웨덴 총리가 유럽연합(EU) 대표로 북한에 갔을 때도 그런 충고를 했다고 들었다"고 소개했다.
/이진동기자 jaydlee@hk.co.kr
■ 韓·美관계 언급
김대중 전 대통령은 15일 "2001년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공동성명에도 없던 김정일 비난 발언을 해 굉장히 당황했었다"며 대북문제를 둘러싼 미국과의 갈등 및 해결 과정을 설명했다.
김 전 대통령은 부시 행정부와의 관계에 대해 우선 "긴장은 있었지만 나빴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총평했다. 하지만 그는 "부시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2차 남북 정상회담과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에 합의한 뒤 기자회견에서 나를 앉혀놓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자기 국민들 밥도 못 먹이면서 군사력만 강화하는 것은 진정한 지도자가 아니다'고 비난해 문제가 심각해 졌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정상회담이 끝난 뒤 미국 각계 지도자들과 질의응답을 갖고 이들을 설득시켰고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인 부시 전 대통령에게도 전화를 걸어 협력을 당부했다"고 긴박했던 대응 과정을 털어놓았다. 당시 부시 전 대통령은 "아들이 북한과 대화할 것이고 그렇게 하도록 나도 노력하겠다"고 안심시켰다고 김 전 대통령은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은 "그러나 클린턴 행정부와는 (나의) 방북 전후로 협의하고 대미관계 개선을 바라는 김정일 위원장의 의지도 미측에 전달했다"며 북측이 클린턴 정부와 현안들을 매듭짓지 못한 점을 못내 아쉬워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해 2월 부시 대통령 방한 당시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을 악마의 제국이라고 했지만 대화를 통해 스타워즈 문제를 해결하고 소련을 개방으로 유도했듯이 북한이 싫어도 대화해야 한다'고 설득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후 부시 대통령과 좋은 친구로 신뢰를 갖기 시작했다"고 화해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미국 내에 긴장 지향적인 사람들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부시 대통령은 여전히 평화적 해결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으므로 이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대미외교 노력을 강조했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