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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현장을 가다/상인들 "IMF보다 혹독… 작년의 半도 안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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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현장을 가다/상인들 "IMF보다 혹독… 작년의 半도 안팔려"

입력
2003.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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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이 넘게 이 곳 동대문시장에서 장사를 했지만 이렇게 어렵기는 처음이요. 작년의 절반도 안 팔린다니까요. 대통령도 바뀌고 주가도 조금 올라간다고 한다는데 왜 이리 돈은 안 도는지 모르겠네요. 조금만 참으면 나아질려나…" 주말이 시작된 14일 새벽 1시께 찾은 서울 동대문시장 D쇼핑몰에서 만난 여성의류점 주인 이지현(42·여)씨는 깊은 한숨과 함께 불경기를 호소했다. 예전에는 평일에도 쇼핑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불야성을 이루었던 이 쇼핑몰은 이날따라 폐점이나 휴점으로 문을 닫은 매장도 곳곳에 눈에 띄고 빗방울까지 흩날리는 을씨년스런 날씨 탓에 적막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출입구 옆 무대에서 고객을 끌기위해 매주 금요일 밤 시작돼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지던 댄스 가수 공연등 각종 이벤트도 이날은 일찌감치 종을 친 뒤였다.불황 직격탄 의류업계

경기 불황의 직격탄을 맞는 의류업계의 속성상 이곳 상인들은 한결같이 "IMF때 보다 더 어렵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하면서도 "그래도 조금만 버텨내면 하반기부터는 다소 나아질 것이란 기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희망 섞인 기대를 보였다. 여성 의류점 주인 이씨는 "똔똔(현상유지)을 유지하는 것이 지금의 목표인데 이를 위해 할 수 없이 중저가 상품을 많이 갖다 놓고 있다"며 나름대로 '불황기의 상술'을 소개했다. '정가판매엄수'라는 매장 규칙을 어기고 '20∼30% 세일'이란 안내문을 내걸고 생존차원의 전략에 매달리는 상인들도 상당수에 달했다.

D쇼핑몰 바로 옆인 M쇼핑몰도 사정은 마찬가지. 숙녀의류를 판매하는 이모(41·여)씨는 "아예 마수걸이를 못하는 날도 있다"며 "동대문시장을 먹여 살리던 20∼30대들이 카드 소비를 줄이는 바람에 경기가 썰렁해진 것 같다"고 나름대로 진단했다. 이 쇼핑몰에서 가방점을 운영하는 김모(47)씨는 이날 하루 매출액이 가방 10개를 팔아 28만원이라고 적힌 판매장부를 꺼내 보여주며 푸념을 늘어 놓았다. 이 수입으로는 월급도 주기 힘들어 최근 2명의 아르바이트생에게 나오지 말라고 했다. '불황기를 버텨내려면 우선 인건비라도 최소화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같은 시각 서울 남대문시장. 새벽까지 환하게 불을 밝힌 채 지방에서 물건을 떼러 온 상인들로 북적댔던 시장 통로는 인적조차 찾기 힘들 정도였다. 회현역 주변과 남대문에서 서울역으로 이어지는 도로에는 지방 번호판을 단 전세버스, 승합차 5대만 서 있을 뿐이었다. 상인들은 아예 손님 끌기를 포기한 듯 책을 읽고 있었다. 15년째 이곳에서 모자를 팔아왔다는 문석희(42)씨는 "지방도 불경기를 타는 지 지방에서 물건을 떼러 오는 사람도 없다"며 연신 담배를 빨아대다 정부의 경제정책을 성토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경기가 살아나도록 지원해주기는 커녕 이래라 저래라 훈수만 많이 두는 통에 국민들만 헷갈린다"는 것이다. 그래도 남대문 시장 상인들에게는 '땡처리업자'라도 최근 들어 다소 늘어 나고 있는 것이 큰 위안이 된다고 했다.

의류도매업자 김모(47)씨는 "손님들이 서서히 빠져나가는 새벽 2시 무렵 이맘때씩 '거금'을 들고 나타나 물건을 싹쓸이 해가는 땡처리업자들이 다소 늘었다"며 "'꿩 대신 닭'이지만 땡처리업자도 반갑다"고 쓴 웃음을 지었다.

불황속 할인점은 선전

동대문이나 남대문 시장으로 물건을 사러 오는 지역 상인들이 전하는 지역경제의 실상은 더욱 힘들었다.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이영미(47·여)씨는 "예전 같으면 버스 3대에 120∼130명이 함께 올라왔지만 오늘은 20여명만 올라왔다"며 "망하기 직전인 지방 상인들에 비하면 그래도 서울은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꼬집었다. 서울의 대표적 재래 시장인 경동시장도 활기를 잃은 지 오래. 식료품을 파는 박모(54·여)씨는 "경기가 어려우면 이곳처럼 싼 곳으로라도 사람들이 몰려야 하는데 사람들이 안 보이는 것을 보면 도대체 뭘 먹고 사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그래도 대형 할인점들은 선전중이다. 불황에도 올 1·4분기 매출액이 16% 증가한 강서구 E할인점의 김대식(47) 과장은 "생활필수품과 식품류 부문의 매출이 다소 늘었다는 사실은 소비자들이 최소한 생필품만 구입하는 '생존형 소비'로 돌아섰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올해 서울시내 대형 할인점의 경우 식품등 생필품 매출만이 10∼15%씩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의류업계와 더불어 음식점도 불황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상태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서부지원 뒷편 마산아구찜 주인 양순자(48)씨는 "최근 손님들이 싼 메뉴만 찾는 바람에 매상이 평소에 비해 30% 정도 떨어졌다"며 "싼 메뉴를 추가 개발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씨는 고급 음식점에 비하면 가격이 저렴한 식당을 운영하는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 고급 일식집 등은 여름이란 계절요인까지 겹쳐 매출이 70%이상 떨어져 살기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서울 성신여대 입구에서 D일식집을 운영하고 있는 마모(37)씨는 "워낙 손님이 없다 보니 점심이나 저녁 특별할인이란 명목으로 가격을 깎아 주고 있다"고 귀띔했다. 수원 영통지구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이곤수(45)씨는 "주요 고객들인 인근 S전자가 회식을 자제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바람에 매출이 줄어 애꿎은 종업원만 여럿 내보냈다"고 허탈해 했다.

박리다매가 생존전략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갈비집을 운영하고 있는 고모(37)씨는 적자를 보더라도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이번 불황을 이겨내기로 하고 과감한 투자를 했다. 100만원을 들여 전광판을 만들고 120만원을 들여 1,000세대 이상 되는 아파트의 관리비고지서에 삽입광고를 게재했다. 이런 불황기에는 박리다매가 그래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고씨는 "이익은 조금만 보더라도 식당의 이미지를 계속 유지하고 직원들을 내보내지 않으려면 박리다매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고 말했다.

'시민의 발'인 택시·버스업계도 계속되는 승객감소와 적자누적으로 벼랑 끝에 내몰렸다. 택시기사 황모(41)씨는 "승객들이 기본요금 거리정도만 택시를 탈 뿐 장거리를 가려고 하지 않아 빈차로 다닐 때가 많다"며 "박봉에다 경기침체까지 겹쳐 일을 그만두는 택시 기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고 전했다. 30여년 택시운전 경력의 김형련(57)씨는 "서울 강남, 강북을 가리지 않고 밤이면 인적이 끊기는 바람에 일산, 분당 등 신도시로 원정을 나가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서울택시노조는 "IMF때 30%대로 최악이었던 7대 도시 빈택시 비율이 최근 그보다 더 높은 40%대를 훌쩍 넘어 생존을 위협 받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토로했다.

'불황무풍지대'로 통했던 백화점도 계속되는 불황에 속을 태우기는 마찬가지다. 롯데백화점 잠실점 혼수용품매장 직원 권영순(54)씨는 "하루 3∼4명씩 찾던 손님이 올해 들어 일주일에 한 두명으로 줄었을 정도로 장사가 안 된다"며 "한 달에 350만원가량 내는 관리비, 임대료도 버거울 지경"이라고 말했다. 권씨는 "불황이라도 돈을 아끼지 않는 혼수품이 이 정도라면 다른 품목들 사정은 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일부 유명 백화점들은 불황의 영향을 받지 않는 명품족들의 판매로 그나마 현상을 유지하고 있다. 압구정동 H백화점 내 한 명품매장의 직원은 "10∼20대 손님들이 줄긴 했지만 고급신발 등은 꾸준히 평균매출을 유지하고 있다" 고 말했다.

/김명수기자 lecero@hk.co.kr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범기영기자 bum170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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