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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현장/출범 1년반 국가인권위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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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현장/출범 1년반 국가인권위 현주소

입력
2003.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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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최후 보루'를 자임한 국가인권위원회는 좌와 우 가운데 어디에 서 있는가.출범한 지 1년 6개월이 지나면서 인권위의 성과와 한계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인권위가 한국 사회에서 첨예하게 입장이 대립되는 병역 문제, 전자정부 시스템, 동성애 등에 대해 판단을 하면 할수록 각종 이해 관계와 이념의 틀에 따라 찬사와 비난이 쏟아진다. 인권위에 대한 관심이 국민의 인권의식을 향상시키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인권위의 권한과 자세에 대한 비판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인권위 1년 6개월의 성과

2001년 11월 인권위는 입법 사법 행정부에서 독립된 국가기구로 사회적 차별과 인권 침해 방지를 통한 '인권 바로 세우기'를 기치로 내걸고 출범했다. 국회(4명) 대통령(4명) 대법원장(3명)이 지명한 11명의 인권위원과 180여명의 직원으로 구성된 인권위는 주요 진정사건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전원위원회와 3개의 소위원회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대부분의 결정 사항은 인권상담센터를 통해 접수된 진정사건을 인권위 조사관이 조사하는 과정을 거친다. 5월말 현재 총 5,114건의 진정사건이 접수됐고 이 중 2,985건이 처리됐다. 그러나 80% 정도의 사건은 인권위법상 조사대상이 되지 않아 각하된 반면 관련 기관 등에 인권침해나 차별행위 시정을 권고하거나 수사기관에 고발한 것 등은 84건에 불과하다.

이러한 결정 사항 가운데 지난 1년간 한국민들의 인권 의식을 일깨운 성과로 꼽을 만한 것이 인종 차별적 선입견을 깬 문구류 '살색' 표기 금지 대학교수 모집시 나이제한이 평등권 침해라는 결정 유치장 입감 과정의 알몸검사 개선 권고 등이다.

인권운동사랑방 이범용 상임활동가는 "인권 옹호를 위해 최소한의 자정 기능을 하는 인권위 활동으로 국민들의 인권 감수성이 살아나고 국가기관이 차별과 인권 침해 행위에 경각심을 갖게 됐다"고 평가했다.

가열되는 논란

가수 유승준씨 한국 입국 금지 문제와 관련된 진정 사건은 인권위가 갖는 딜레마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인권위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은 유씨의 입국 허용 여부를 둘러싼 각종 의견들로 미어 터졌다.

그러나 병역 문제가 한국사회에서 갖는 민감성과 외국 국적을 가진 유씨의 입국을 막는 것은 인권침해 가능성이 있다는 여론이 대립하면서 인권위는 곤혹스러운 입장이 됐다. "인권침해 소지를 없애야 한다"는 진보적 시각과 "병역 문제는 양보할 수 없다"는 보수적 시각의 대립 한가운데 인권위가 서있는 것.

지난 3월 인권위 차원에서 발표한 이라크 전쟁 관련 반전(反戰) 성명과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인권 침해 결정 등도 비슷한 논란을 야기했다. 건국대 법대 한상희 교수는 "인권위는 진보와 보수의 색깔 논쟁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정의로움이 무엇인지를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인권위 최영애 사무총장은 "민감한 이슈를 다루는 인권위는 진보와 보수 양쪽의 입장을 맞춰가는 것이 아니라 인권의 원칙 아래서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권 관련 단체들은 또 인권위가 조금 더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각종 결정의 후속조치에 민감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군대 교도소 등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1년 이상 경과한 사건이나 수사 중인 사건을 다루지 못하게 하는 인권위법은 개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인권침해 사항 시정이나 정책 권고를 관계 기관이 거부하는 경우 이를 강제할 권한이 확보돼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김이경기자 moonlight@hk.co.kr

■ 최영애 사무총장

국가인권위원회 최영애(52·사진) 사무총장은 인권위가 완전히 자리를 잡지는 못했다고 평가한다. 인권위의 업무는 폭증하고 있지만 시스템이 완벽히 갖춰지지 않아 아직 어려움이 많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나 "아직 타성에 젖지 않은 젊은 조직이라서 점점 원숙함을 쌓아 나간다면 국민들의 인권 신장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인권위 출범 이후 1년 6개월 동안의 활동을 평가한다면.

"출범 초기 일할 직원도 없이 진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에 수 많은 진정 사건이 접수되면서 지금까지도 일들이 적체돼 있습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인권위 구제절차가 빠르고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인권 침해나 평등권 차별 문제에 대해 국민들의 인식의 폭을 넓힌 것은 사실입니다."

―인권단체들은 인권위가 조금 더 적극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비판하는데.

"법적인 한계를 넘어서는 사회적인 신뢰를 얻기 힘듭니다. 다만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국민 인권 신장과 해묵은 모순의 해소를 위해 개방성, 신속성을 바탕으로 진보적인 판단을 해나갈 것입니다."

―인권위가 견제해야 할 대상인 정부 기관에 포위돼 있고, 예산·인사 문제 등과 관련된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독립된 국가 기관이면서 공무원 복무 규정은 따라야 하는 모순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인권위법 개정을 통해 독립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인권위가 앞으로 나가려고 하는 방향은.

"각 사안의 결정 과정과 내용에 대해 공개의 폭을 확대하겠습니다. 인권위가 다루는 각 사안에 대해서는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리더라도 인권의 원칙에서 판단을 해 나갈 겁니다."

/정상원기자

■ 해외 인권 기관

국가인권기구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조직이 아니다. 현재 세계 94개 국가에 독립적인 국가기관 형태 혹은 비정부기구(NGO) 성격으로 인권 관련 기관들이 활동하고 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는 호주, 뉴질랜드, 인도, 필리핀 등 12개 국가에 인권기관이 설치돼 있다. 미국의 경우 국가 차원의 인권기관은 없지만 각 주에 인권기구가 설치돼 있고, 각 시와 카운티, 타운에 인권위원회가 마련돼 있기도 하다.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와 유사한 형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종 차별로 악명이 높았던 남아공은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인 1995년 '남아공 인권위원회'를 설립했다. 남아공 인권위원회는 헌법에 인권관련 기관 설치 규정이 있고 경찰권 요청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한국 인권위보다 권한이 막강하다.

한편 평등권 침해 문제만을 다루거나 장애인 아동권리 등의 특정 영역을 전문적으로 조사하는 기관을 둔 나라들도 있다. 영국의 경우 장애인 권리위원회, 아동권리위원회 등 전문 영역별로 인권관련 기구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인권 기관들은 대부분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의 지원을 받는다. 인권고등판무관실은 인권 침해 방지와 긴급 상황에 대처하는 조직. 61년 설립된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널)는 양심수 석방, 고문과 사형제도 폐지 등을 촉구하는 대표적인 국제 인권 NGO다.

/김이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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