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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에선]단양 "야생화 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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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에선]단양 "야생화 붐"

입력
2003.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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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은 산촌이다. 넓지 않은 땅에 소백·월악의 두 준봉이 섰고, 1,000고지에 육박하는 산만도 열 손가락 다 동원해야 간신히 센다. 거기를 남한강 평창강과 지천들이 자리를 잡았으니, 주춧돌 앉힐 만한 땅이라야 군 면적의 10% 남짓이다. 대신, 풍광은 그만이다. 단양8경의 1경으로, 애국가 '무궁화 삼천리…'대목의 단골 배경인 도담삼봉이 있고, 천연기념물 반열에 든 석회동굴이 세 곳. 일찌감치 관광산업에 눈을 뜬 것도 그 때문이다. 정초 소백산 해맞이 축제부터 시작해, 철쭉제, 행·패러글라이딩 대회, 마늘·수박·감자·사과축제, 가을 감골 단풍제에 이르기까지 일년 열 두 달 이어지는 축제만도 열 두개. 거기에 또 하나가 얹히게 됐다. 야생화 축제다. 금상첨화(錦上添花)! '관광 단양'의 절정이자, 완성인 셈이다.꽃 몸살 든 감골 마을

적성면 상1리는 금수산(1,016m) 중턱 500고지 감골 자락에 자리를 튼 마을이다. 63가구 120여 주민들은 주말 하루 예닐곱 대씩 드는 관광버스 등산객들을 상대로, "수입산 아니냐"는 억장 무너지는 소리를 들어가며 고추와 마늘을 판다. 이장 박영봉(65)씨는, 그게 몸을 갈아 버는 수입의 전부라고 했다. 그래서 가난한 동네라면서도, 그는 밝게 웃었다.

세월도 비껴간 듯한 마을이 꽃 몸살을 시작한 것은 지난 해 10월, 자칭 '들꽃에 환장한' 원인철(56)씨 부부가 직장까지 그만두고 마을 들머리에 야생화 농장을 열고부터 였다. 정확히는 이듬해인 올 봄부터다.

겨우내 을씨년스럽게만 보이던 500평 남짓의 전시장과 육묘장, 화단의 250여종에 이르는 들꽃밭 변신은 관광객들보다 먼저 주민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었다. 나무 짐 지고 오고 가며 '며느리 밥풀'로 알던, 그래서 못난 며느리 볼에 붙은 밥풀쯤으로 스쳐 보던 들풀이 '금낭화'라는 이름을 달고 상품으로 변신하는 과정은 경이 그 자체였다. 그 뿐인가. 복수초 얼레지 앵초 등등…. 달리 부를 까닭이 없어 싸잡아 들꽃으로 여겼지, 따지자면 남들보다 모를 리 없는 것들이 고추, 마늘 못지않은 상품이던 것이다. 그것도 외지인들이 제 발로 찾아와서, 우리 꽃이라며 탄성까지 질러대며 지갑을 여는 건 숫제 마술이었다. "세상이 바뀐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 요상스레 바뀐 줄 알았나."

꽃씨 터지듯 농사도 번지고

그것이 물론 주민들 생각처럼 마술은 아니다. 원씨 부부는 하루 종일 들꽃에 매달린다. 그늘을 좋아하는 꽃들에게 차양막을 둘러야 하고, 습기를 꺼리는 것들은 물주기에 신경을 써야 한다. 씨를 받고 뿌리를 챙기는 번식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제 좋은 곳에 저절로 나고 자라던 야생의 것들을 사람의 품에서 길러 상품화하는 데 따르는 수고다. "매발톱 보이죠? 색이 다르잖습니까. 변이종입니다." 전국 야생화전시회를 누비며 좋은 종자를 구하고, 수분교배를 통해 생긴 변이종을 얻느라 2년씩 공을 들인 것들도 있다. "절기 따라 터져 나오는 꽃들을 보는 게 너무 황홀해서 일 같지도 않다"고 했지만, 그래도 부부의 일은 노동이다. 그는 내년부터 꽃누름(압화)과 꽃물염색 등 프로그램을 갖춘 야생화 체험농장도 열어 볼 참이다.

밉지만 고마운 점은, 식물은 동물과 달라 사람 품에서 자라도 제 천성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 꿩이나 산돼지는 사육된 놈은 육질부터 뭐가 달라도 다르지만, 야생화는 야생의 색과 향 등 맛을 오롯이 지켜낸다. 말라 죽을지언정 순치되지 않는 고절(固節)! 그래서 늘 야생화다.

원씨는 농업기술센터와 함께 야생화 농사 보급에도 열성이다. "기술이야 제가 아는 한 전수할 참입니다. 외래종처럼 로열티 무는 것도 아니고, 겨울 온실도 필요 없죠. 일이라 봐야 콩밭 매는 데 대겠습니까." 주민들을 주축으로 단양군 야생화연구회(40명)가 조직돼 기술과 정보를 전수받기 시작했고, 이 가운데 7명은 30∼40평씩 자투리 땅을 갈아 꽃 돈을 벌고 있다. 부녀자 10여명도 모여 동호회를 창립했다. 회원들은 각자가 가꾼 야생화 분재 등 작품을 축제 때마다 출품한다. 분경(盆景)업을 하는 연구회 회장 김유흥(52)씨는 "관에서 조금만 지원을 해주면 대부분 꽃 농사를 짓겠다는 분들"이라고 했다.

학교들도 야생화 붐

관내 11개 초등학교 가운데 가장 적은, 전교생 48명의 적성면 대가리 대가초등학교 기능직원 서재석(43)씨도 연구회 회원이다. 3년 전부터 학교 화단에 한 두 포기씩 야생화를 심다가 지난 해에는 교사 학생들과 함께 팬지 데이지 등 외래종 화단을 갈아엎고, 봉숭아 금송화 등 100여 종의 야생화를 심었다. 시골 벽지학교의 들꽃 사태가 하도 아까워 지난달 관내 학교들에 꽃 잔치 소문을 냈다가 멀리 경기도 교사들까지 찾아오는 바람에 손님을 치르느라 혼이 빠졌다고 했다. 5월의 대가초등학교는 관광객들의 사진촬영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최근에는 관내 학교들 마다 야생화 붐이 일어 난리도 아니다"고 귀띔했다. 학교는 내년 봄부터 아이들이 만든 화분으로 작품전시회를 열어 볼 참이다.

야생화연구회는 야생화를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일에도 마음을 쓴다. "나무 땔감 하던 시절에는 수시로 검불을 걷어주니 꽃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숲이 우거져서 제대로 못자라고, 그나마도 등산객 손을 타니 씨가 말라. 종자를 받아서 제 살만한 곳에 뿌려주면 좀 좋겠어?" 연구회의 맏어른 홍신택(65)씨는 그 일을 4,5년 뒤부터 시작할 기대에 부풀어 있다.

/단양=글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사진 원유헌기자

국내야생화 4,700여종 10%가량이 상품가능성

한 해 우리나라 화훼시장 규모는 약 2조원 대. 대부분이 외래종이고, 야생화 시장은 집계조차 안될 정도로 미미하다. 그나마도 야생화가 상품 대접을 받게 된 것은 길게 봐서 5,6년 전부터다. 정부(농림부)가 야생화를 자원으로 여겨 전국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보존사업을 시작한 것도 그 어름부터다.

우리 들꽃의 맛을 아는 이들은 시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본다. 학자들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국내 자생하는 야생화는 4,700여종. 이 가운데 약 10%가 상품성이 있는 것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야생화와 잡초는 구분이 모호하다. 마늘 농사꾼에게 마늘밭의 야생화는 민들레고 엉겅퀴고 모두 잡초이겠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 땅에 잡초는 없다'고도 한다.

들꽃 농민들은 지자체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도로변 꽃길 조성은 좋은데, 대부분 금계국 등 외래종을 심어댄다는 것이 그것이다. 다년생 우리 들꽃 씨앗을 뿌려두면 운치있고, 좀 좋겠냐는 것이다. 7∼9월에 연보라색 꽃을 틔우는 벌개미취 같은 놈들은 세력이 강해 잡초가 근접도 못한다고 했다. 중앙고속도로 북단양IC에서 도담삼봉을 넘어오는 국도변에는, 일전에 노무현 대통령이 청남대에서 아내 권양숙 여사에게 꽃반지를 만들어 건넸다는, 패랭이들의 꽃분홍 유혹이 한창이었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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