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친 것은 죄가 아니지만 거짓말은 결코 용서할 수 없다." 미국 언론이 부상으로 깊은 슬럼프에 빠진 박찬호를 연일 통타하고 있다. 발단은 '3년동안 아픈 것을 참고 던졌다"는 그의 고백. 미 언론들은 동정심은 커녕 "구단과 팬을 속였다"며 자질시비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역에서 바라보면 동양인투수에 대한 차별 아니냐는 억하심정까지 들 정도다. 그러나 생각을 바꿔 박찬호가 지극히 미국적인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다는 현실을 떠올리면 상황은 확 달라진다.언제부터인가 박찬호에게 공을 던질 때마다 허리통증이 찾아왔다. 등판 자체가 힘든 상황도 많았지만 이를 꽉 깨물고 던졌다. 예민하고 자존심 강한 성격에 한낱 부상으로 무릎 꿇는 모습을 팬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을지 모른다. 더욱이 머리에 붕대를 두르고 진통제를 먹더라도 마운드에서 쓰러져야 된다는 한국식 헝그리정신을 미덕으로 알고 자란 터였다. 이렇게 3년이 흘렀고, 급기야는 12일 선발투수로 나섰다가 겨우 2회를 던진후 허리통증을 견디지 못해 자진강판하고 말았다.
이런 그림이 그들에게는 어떻게 비쳐졌을까. 프로야구 전문가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메이저리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부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프로선수의 생명이라고 여기는 그들의 사고방식에서 보면 박찬호의 '부상 숨기기'는 스스로 부상을 키워온 자해행위나 다름없다. 부상을 감춘 채 출전하는 것 역시 팀에게는 이적행위였던 셈이다.
박찬호는 미국에 진출한 한국선수 중 의사소통 등 현지적응이 비교적 잘 됐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 그가 그들 방식이 옳으냐, 우리 방식이 나은가에 대한 가치판단을 떠나 가장 긴요한 생각의 현지화에서는 결과적으로 실패한 셈이다. 박찬호는 살벌한 글로벌시대를 사는 각 경쟁 주체들에게 또 다른 교훈을 주고 있다.
김병주 체육부 기자 b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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