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ℓ한 병에 1만5,000원.값비싼 음료수 가격이 아니다. '해양 심층수(deep ocean water)'의 값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물을 사먹는다고 하면 호사를 부리는 것으로 손가락질 받았으나 요즘은 사먹는 물의 종류가 수십 종에 이를 정도로 일반화됐다.
최근 '질 좋은 물'을 찾는 사람이 늘면서 바다 깊숙이 흐르는 해양 심층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물 부족 때문에 '물 전쟁'이 발발할 우려까지 나오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 등에서는 바닷물을 식수로 사용하는 방안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물 부족 국가인 우리나라도 동해에서 해양 심층수를 끌어올리기 위해 2005년까지 수 백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해양 심층수란 햇빛이 도달하지 않는 수심 200m 이상의 깊은 곳에 있는 바닷물. 2∼6도의 저온 상태를 유지하고 유기물이나 병원균 등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해양식물의 생장에 필수적인 영양염류를 다량 포함하고 있어 '신비의 물'로 불린다.
성인병에도 좋아
그린랜드 부근이나 남극의 빙하가 녹아 내린 해양 심층수는 염분의 농도차에 의해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아 흘러 다닌다. 빙하에서 녹는 물의 양은 1초에 약 4,000만톤으로 어마어마하다.
해양 심층수는 해류를 따라 인도양과 태평양을 돌다가 2,000년 만에 바다 표층으로 상승한 뒤 다시 냉각돼 하강하는 '해양 대순환'을 하게 된다. 해양 심층수는 이처럼 오랫동안 대기와 접촉하지 않아 세균이 거의 없다. 깊은 바닷속에서는 영양 물질을 소비하는 식물 플랑크톤이 없기 때문에 박테리아 등에 분해된 질소, 인, 규산 등의 무기물도 풍부하다. 또 아주 오래 전에 만들어진 해양 심층수는 각종 미네랄과 함께 항산화(抗酸化) 물질도 포함하고 있고 그 속에 녹아 있는 금속 이온들의 작용으로 활성산소(活性酸素)를 제거하는 효능도 있다.
이에 따라 해양 심층수는 식품, 음료, 건강, 의료, 미용, 수산업, 농업, 에너지 등의 분야에서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다. 수산업에서는 미역, 다시마 등 해조류 배양과 광어 전복 등의 양식에 쓰이며, 농업 분야에서는 고랭지 채소, 수경재배 등에 사용한다.
의학계에서는 해양 심층수를 항암제, 아토피성 피부염 치료제 등에 이용하고 있다. 일본 고치(高知)현 우지 다케다 병원에서 성인 아토피성 피부염 환자에게 해양 심층수를 매일 500쭬 먹인 결과 상당한 효과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일본농수산성 식품종합연구소는 생쥐에게 해양 심층수를 먹인 결과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가 줄어들고 동맥경화증이 약화됐다고 발표했다. 이는 해양 심층수가 규산염(SiO3)을 많이 포함하고 있기 때문인데 규소는 동맥경화, 관절염, 고혈압 등을 막아주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또한 역(逆)삼투압 방식으로 염분을 뺀 해양 심층수는 피부미용에 좋은 효능을 발휘한다.
일본 등에서는 심층수를 음료수로 시판하고 있으며 간장, 청주, 과자, 소금 제조에도 널리 이용하고 있다.
언제 개발했나
해양 심층수를 가장 먼저 개발한 곳은 미국. 1974년 설립된 하와이자연에너지연구소는 해양 심층수를 끌어 올려 농업, 양식 어업에 이용하기 시작한 게 시초다. 시금치같이 차가운 기후에서 자라는 채소를 재배하기 위해 밭 밑에 파이프를 매설하고 그 안에 차가운 해양 심층수를 통과시키고 있다. 하와이주는 이 방법으로 연간 3,000만∼4,000만 달러의 수익을 거둔다. 일본에서는 1985년 과학기술청 주관으로 해양 심층수 연구를 시작해 1994년 고치(高知)현에서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현재 고치현을 비롯해 토야마(富山), 오키나와(沖繩) 등 3개 현에서 취수 시설을 가동 중이며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면서 연간 2조원(2001년 기준)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도 해양수산부와 한국해양연구원 김현주 박사팀 주관으로 2005년까지 530억원을 투입해 강원 고성군 죽왕면 오호리 앞바다에 3㎞에 달하는 대형 파이프 라인을 설치, 해양 심층수를 퍼올릴 계획이다. 경북 영덕군도 올해 해양 심층수 개발을 위해 350억원 민자 유치 활동을 벌이고 있다. 김현주 박사는 "해양 심층수는 지구 바닷물의 95%를 차지할 정도로 방대한 양이므로 이를 개발하면 앞으로 우려되는 물 부족 현상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물론 다양한 부대 효과도 누릴 것"이라고 말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도움말=한국해양연구원 해양심층수연구센터 김현주 책임연구원, 경상대 지질학과 최진범교수, 연세대 의대 가정의학과 이혜리 교수>도움말=한국해양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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