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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쓴소리]조중동의 언론윤리 파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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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쓴소리]조중동의 언론윤리 파탄

입력
2003.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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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권 사람들은 자신들의 모든 과오를 언론 탓으로 돌리는 고질병을 앓고 있다."정치인이나 지식인에게 권한다. 위와 같은 요지의 발언만 하면 당신의 이름과 얼굴 사진은 조중동(조선-중앙-동아)에 크게 실릴 것이다. 조중동은 이미 수십 번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거의 확실하다. 최근엔 세상 사람들로부터 거의 잊혀진 어느 의원이 "바보들은 항상 언론 탓만 한다"는 명언(?)을 한 덕분에 조중동 6월 12일자에 일제히 대서특필되면서 화려하게 세인의 관심권으로 복귀했다.

나는 조중동이 왜곡만 저지르지 않는다면 그렇게 할 자유를 존중해주고 싶다. 조중동에 대해 '지면의 사유화' 비판이 쏟아진다 해도 새삼스럽게 무어 그리 한가한 비판을 하느냐는 면박을 주련다. 그러나 조중동 5월 30일자에 실린 다음과 같은 기사 제목들은 언론 윤리의 파탄이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에 책임돌리는 건 잘못'(조선), '민주정치 잘못된 책임 언론에 돌리면 안된다'(중앙), '언론에 책임전가 잘못'(동아) 등이다.

조중동은 인용 부호 속의 말이 고려대 최장집 교수의 주장이라며 그런 장난을 쳤다. 이게 한 나라를 대표하는 유력 신문들이 할 짓인가? 이건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악의적인 왜곡이다. 그것도 최 교수의 논지를 180도로 뒤집어 놓은 왜곡이다. 이들이 얼마 전에 크게 보도한 미국 뉴욕타임스의 자기 성찰 방식에 따르자면, 이는 편집 책임자가 사직을 해야 할 만큼 큰 사건이다.

최 교수의 논문은 지금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게 된 가장 큰 책임을 조중동과 같은 보수 신문들에게 돌리고 있다. 최 교수는 민주화 이후 나타난 변화의 특징으로, 언론의 역할이 커지고 언론이 정치를 주도하고 압도하게 된 것을 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당중심의 정치가 약해지고 언론이 정치를 대신한다는 얘기는 사회의 광범한 저변층이나 중산층의 이익과 욕구보다는 상층의 기득 이익이 일면적으로 대변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최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민주정치가 잘못 돌아간다고 할 때 그 책임을 모두 언론에 전가하는 것은 사태의 일면만 본 것으로 무책임한 일이다. 왜냐하면 언론이 주도하는 정치는 정당정치의 실패의 다른 면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언론에 가장 큰 책임을 돌린 최 교수가 그렇다고 해서 모든 책임을 모두 언론에 전가하는 것엔 문제가 있다는 뜻으로 한 발언이다. 무게가 실리지 않은, 오해에 대한 예방적 차원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그런데 이 발언이 어찌하여 위와 같은 기사 제목으로 둔갑할 수 있는가?

조중동은 '노무현 때리기'를 위해 진보 담론까지 이용하고 있다. '보수' 입장에서 한번 때리고 '진보' 입장에서 한번 더 때리겠다는 뜻일 게다.

조중동에게 권고한다. 노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보수적 지식인들은 수없이 많다. 그들의 발언만 이용해 노 정권을 비판하라. 그래야 앞뒤가 맞는다. 개혁·진보적 지식인들의 발언까지 노 정권 비판에 동원하고 그것도 악의적인 왜곡까지 저질러가면서 그렇게 하는 건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판이라는 것도 일관성이 있고 가닥이 잡혀야 비판을 받는 쪽도 무슨 과오를 바로 잡을 수 있을 게 아닌가.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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