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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비블리오테라피

입력
2003.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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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골드 지음·이종인 옮김 북키앙 발행·1만5,000원태초에 말이 있었다. 하지만 소설은 끝났고 읽기는 소명을 다한 것처럼 보인다. 태초로부터 너무 멀리 온 것 같다. 영문학자 조셉 골드는 그러나 시와 소설의 시대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는 "문학 작품은 인간의 생존 전략"이라고 믿고 있으며, 문학을 교육과정의 중심에 두려는 투쟁을 오랫동안 계속해 왔다. '비블리오테라피(Bibliotherapy)'는 그 믿음을 글로 옮긴 것이다.

'비블리오테라피'는 '독서를 통한 심리 치료'를 가리킨다. 인간의 삶이 그대로 하나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언어로 지어진다. 모든 인간은 문학 텍스트가 될 수 있다. 홀로 되고 상처받은 텍스트로서의 인간은, 언어로 쓰인 문학 작품에서 자신이 겪는 것과 같은 아픔을 본다. 소설 속 상처받은 사람의 목소리에 공감하면서 독자의 영혼은 위로를 받는다. 혼자만 겪는 고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는 고립감에서 벗어난다. 하루종일 걷기만 하는 사람이 있다. 마을 사람들이 '좀머'라는 성(姓)밖에 모르는, 외따로 사는 사람이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에도 묵묵히 걷고 있던 그 사람에게 차를 타라고 권했다. 좀머씨가 외쳤다. "날 제발 좀 내버려 두시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짧은 소설 '좀머씨 이야기'에서 좀머씨의 절망적인 대사는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쯤 외치고 싶은 탄식이다.

독서는 마음의 위로에서 좀 더 나아간다. 그것은 억압에서 벗어나 힘을 갖는 법을 알려준다. 가령 루시 M 몽고메리의 '빨강 머리 앤'이 그렇다. 무릎을 꿇는 엄숙한 기도를 가르치는 마릴라 아주머니에게 앤이 말한다. "왜 기도를 할 때는 무릎을 꿇어야 하는 거죠? 나는 진정으로 기도를 올리고 싶으면, 아주 넓은 들판으로 나 혼자 걸어가서 깊고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겠어요. 그러고는 저 사랑스러운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는 거예요. 그러면 나는 기도를 '느끼겠지요.' 자, 이제 준비되었어요. 뭐라고 말하면 되는 거죠?" 앤은 신이 자신을 이해해준다고 확신하고 있으며, 기도는 형식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믿는다. 앤에게 남들과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두려운 게 아니다. 이 소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에게 힘과 성원을 보내고 생존 방법을 알려준다. 책을 읽는 우리 모두는 크건 작건 상처와 고통의 기억을 갖고 있다. 글로 씌어진 자유롭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제한된 시공간에 가두어졌던 상한 마음은 위로를 받고 힘을 얻는다.

고대 그리스 테베의 도서관 입구에는 '영혼을 치유하는 곳'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플라톤은 문학의 힘이 정치권력의 통제권에 손상을 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역사상의 독재자들은 독서가 현재 상태에 위협을 가하는 '불온한' 행위라는 것을 가슴깊이 새겼다. 독서는 한 사람의 마음을 치유한다. 그 사람들이 모여 세상을 이룬다. 독서는 세상을 바꾸는 행위다. 저자가 추천하는 책 중에는 우리 독자들에게 낯선 작품이 종종 있지만 출판사는 우리 상황과 정서에 맞을 법한 국내 문학작품과 번역물을 골라 따로 싣는 공도 들였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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