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이었던 반도체 산업이 안팎으로 거센 시련에 직면했다. 반도체 산업의 양대 기둥인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각각 공장증설 문제와 대미 통상마찰에 시달리며 경쟁력을 상실할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더구나 위기의 원인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고 정부의 조정과 협상이 필요한 사안이라 기업들은 더욱 속을 태우고 있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잠시만 주춤해도 경쟁력을 상실하는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감안할 때 조속한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내·외풍에 직면한 한국 반도체
하이닉스 반도체에 대한 미 상무부의 관세 부과조치가 '외풍'이라면, 삼성전자의 공장증설 논란은 '내풍'. 기흥·화성단지에서 반도체 12개 라인을 가동해온 삼성전자는 최근 화성에 메모리 생산라인 6개를 추가로 갖춰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수도권 집중억제 정책에 막혀 추진이 전면 중단된 상태다.
이에 앞서 하이닉스 반도체는 미 상무부가 57.37% 반도체 상계관세를 부과한데 이어 유럽연합(EU)에서도 관세를 부과, 수출전선에 비상이 걸렸다. 미 상무부는 18일께, EU는 8월24일께 최종 판정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위기 부추기는 안이한 대응
반도체 전문가들은 "반도체 산업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정책 당국자들의 안이한 대응이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지는 못할 망정 걸림돌은 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 공장증설 문제의 경우 최근 각종 정책추진 과정에서 문제가 된 정부의 조정 기능 부재가 또다시 드러난 사안. 노무현 대통령이 재계 총수와의 오찬에서 허용검토를 시사했지만, 이후에도 부처간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주무 부처인 산업자원부 외에도 건설교통부, 환경부 등과 외부 기구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까지 간여하고 있지만, 어느 곳에서도 뚜렷한 대안이 나오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아무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이닉스 반도체의 통상마찰 문제도 마찬가지. 업계 관계자는 "통상마찰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정부에서 미온적 대응을 하는 바람에 마지막 남은 협상의 기회마저 놓쳐 버렸다"고 지적했다.
이에 비해 우리 반도체 산업을 추격중인 중국은 경제 수도격인 푸둥(浦東)의 중심부에 반도체 단지를 유치하기 위해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등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반도체 전문가는 "일본이 반도체 산업에서 한국에 추월을 허용한 것은 90년대 중반 투자 시기 등을 놓고 머뭇거렸기 때문"이라며 "시간이 곧 경쟁력인 반도체 산업에서는 정부의 정책적인 판단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천호기자 tot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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