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채영주(1962∼2002·사진)가 분재하던 중편 '바이올린 맨'의 후반부 원고를 문예지에 넘긴 것은 마감 두 달 전이었다. 너무 일찍 원고를 보내온 것에 편집자는 어리둥절했다. 그는 원고를 넘기고 일주일 뒤 세상을 떠났다.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유언 때문에 그의 부음은 장례를 치르고도 사흘이 지난 뒤에야 신문에 실렸다.채영주의 유고집 '바이올린 맨'(문학과지성사 발행)이 출간됐다. '바이올린 맨'이 문예지 폐간으로 세상에 다 읽혀지지 못했으니, 독자들은 이제야 그의 유작을 온전하게 볼 수 있게 됐다. 1996년 발표한 자전소설 '미끄럼을 타고 온 절망'도 함께 묶였다.
작가의 유작은 어린아이의 눈으로 본 낭만적 사랑의 비극에 관한 이야기다. '바이올린 맨'으로 불리는 다리를 저는 바이올린 제작자와 빚을 지고 술집에서 일하는 윤주 누나는 가난하지만 순수한 사랑을 나눈다. 한집에서 세를 사는 삼촌과 상미 누나는 보험 사기극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로, 윤주 누나와 '바이올린 맨'의 사랑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려고 한다. '바이올린 맨'은 보험 사기극에 말려 죽고 윤주 누나는 목을 매는 것으로 두 사람의 사랑은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평론가 성민엽씨는 채영주의 소설을 두고 "사랑을 주제로 한 대중소설들에 대한 전복"이라고 평한다. 대중 소설적인 설정과 장치를 가지고 진짜 문학을 쓰려던 것이 작가의 의도라는 것이다. 확실히 SF와 추리기법, 무협이나 느와르 영화 풍 등 채영주가 시도했던 다양한 문학적 실험은 대중적이었다. 그 변주를 통해 작가는 낭만적 사랑을 꿈꾸었다.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채영주의 꿈은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했으되 그의 소설은 우리 문학에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져 놓았다. 성민엽씨가 평한 것처럼 "그가 남긴 글들은 대중문화의 지배에 문학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물음으로서 우리에게 계속 작용하며 살아 움직일 것이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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