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6월14일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가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70세로 작고했다. 그보다 한 달 전 영국 의회는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도 21세가 되면 선거권을 얻도록 인민대표법을 개정했다. 10년 앞서 제정된 원래의 인민대표법에 따르면 여성은 30세가 넘어야 선거권을 가질 수 있었다.맨체스터의 부르주아 가정에서 굴든이라는 성을 받고 태어난 에멀린은 1879년 변호사 리처드 팽크허스트와 결혼하며 팽크허스트 부인이 되었다. 남편 리처드는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과 함께 영국에서 처음으로 여성 참정권 법안을 만든 사람으로, 노동당의 전신인 독립노동당의 지도적 인물들 가운데 하나였다. 1889년 남편과 함께 여성참정권연맹을 만들며 여성운동에 정식으로 뛰어든 에멀린은 1898년 남편이 죽은 뒤에도 여성사회정치동맹을 조직해 일생동안 '남성과 평등한' 여성 참정권 획득을 위해 애썼다. 남편이 그에게 남겨놓고 간 딸 셋도 그에게 큰 힘이 되었다. 이들 네 모녀는 여성의 즉각적 참정권 획득을 위해 폭력 시위도 불사함으로써 감옥을 들락거렸다. 그러나 에멀린과 큰딸 크리스타벨은 선거권의 계급적 평등을 후순위로 돌리고 오직 성적 평등에 집착함으로써, 남편과 아버지가 주춧돌을 놓은 노동당과 등을 돌렸다. 당시 영국에서는 여성만이 아니라 노동자도 참정권 바깥에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에멀린과 크리스타벨은 영국이 이 제국주의 전쟁에 참가하는 것을 지지했으나, 둘째 실비아와 셋째 아델라는 반전의 기치를 내걸고 노동자 계급 쪽으로 다가갔다.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분명히 부르주아 여성운동가였다. 그러나 이 부르주아 운동가의 노력이 보태져 영국의 여성 노동자도 결국 참정권을 얻었고, 그것은 1948년 한국의 모든 여성이 참정권을 얻는 데도 힘이 되었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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