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일선 고등학교는 혼란스럽고 또 너무 바쁘다. 본연의 업무라고 할 수 있는 수업을 제대로 하기 위해 바쁘다면 매우 바람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큰 문제다. 한쪽에서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이냐 학교종합정보시스템(CS)이냐로 갈등이 심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수업시간에 잠자는 학생을 깨워야 하느냐 내버려둬야 하느냐로 혼란스럽다. 그러한 혼란과 더불어 1학기 수시모집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일종의 입도선매라 할 수 있는 1학기 수시모집은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는데, 첫째로 고등학교의 수업을 방해한다. 1학기 수시모집은 고교 3학년 1학기 초반부터 수업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교사들로 하여금 대입전형업무에 매달리도록 만든다. 대학이나 학과에 따라서 전형자료나 방법이 천차만별이라 교사들이 관련되는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고, 추천서, 자기소개서, 증빙서류, 면접 및 구술고사 준비 등을 일일이 도와줘야 하기 때문에 수업 준비는 고사하고 수업자체를 제대로 하기 어려울 정도다. 2004학년도의 경우 1학기 수시모집 인원은 4년제 대학 입학정원의 약 5%에 해당하는 2만명 수준에 불과하지만, 지원자는 수십만 명에 이르기 때문에 그 부작용이 전국의 모든 고교에서 거의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둘째, 공정한 경쟁이란 인식이 거의 없다. 1학기 수시모집에서는 전국적인 수준에서 지원자들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전형자료, 예컨대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과 같은 전형자료가 없고, 또 해당 대학들이 구체적인 선발기준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당락의 합리적인 예측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정당한 노력과 공정한 경쟁을 통한 합격이 약속되는 것이 아니라, 행운의 여신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수시모집에 임하고 있다. 과장하여 표현한다면 거의 로또복권을 사는 심정으로 몇 만원짜리 입학지원서를 제출하는 것이다. 참고로 어떤 학과의 경우 12명 모집에 1,297명이나 지원했다고 한다. 이는 선발기준이 분명했다면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선발기준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누가 합격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원자는 당연히 많아질 수밖에 없다.
셋째, 1학기 수시모집에 합격한 학생들에 대한 후속 조치가 거의 없다. 합격자들은 더 이상 고등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것을 원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학교에서 그 학생을 미리 졸업시켜 줄 법적 근거도 없다. 1학기 수시모집의 합격자들은 2학기 수시모집이나 정시모집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을 박탈당하기 때문에 더 이상 공부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학교에 나와도 특별히 할 일이 없고, 오히려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대학이 수시모집 합격자들을 위해 특별한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그래서 1학기 수시모집 합격자가 발표되는 7월말부터 다음해 3월초까지 약 7개월 동안 합격자들은 인생을 허비할 가능성이 높다.
넷째, 대학의 입학전형관련 업무가 너무 많다. 입학정원의 약 5%를 선발하기 위해 투입되는 인력이나 시간은 정시모집과 거의 비슷할 정도로 업무가 많다. 그리고 전형방법으로 서류심사나 면접 및 구술고사를 많이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대학이나 학과의 교수들을 동원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보직교수들은 물론 일반 교수들의 연구나 교육 활동에 지장을 주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요컨대, 고등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방해할 뿐만 아니라 대학 교육의 내실화를 저해하고, 정당한 노력에 의한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는 부정적 인식이 팽배해 있는 현 상황에서는 1학기 수시모집을 폐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아니면, 고등학교 조기졸업제나 대학의 학기별 입학제 등과 같은 법적·제도적 조치들이 취해질 때까지 중단해야 할 것이다.
백 순 근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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