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 경찰청 특수수사과 5팀 강순덕(37·사진) 경위는 귀가 번쩍 뜨이는 첩보를 입수했다. 정보원이라면 정보원일 수 있는 '비선'(秘線)으로부터 들은 내용은 전·현직 군 장성들의 뇌물 비리 사건이었다. 강 경위는 "명예를 중시하는 군인, 그것도 장군들의 뇌물 비리라는 말에 처음에는 믿기 지 않았다"고 쓴 웃음을 지었다. 청와대 하명(下命) 사건이나 공무원 비리 등 대형 사건을 담당하는 특수수사과 6개 팀 수사요원 30여명 가운데 홍일점인 강 경위는 그러나 수사를 시작하자마자 곧 부패한 군 비리와 맞닥뜨렸다.강 경위는 먼저 이번 사건에 연루된 현대건설 협력업체의 이모(46) 회장을 만났다. 이 회장은 현대건설 김모(54·구속) 상무보가 인천공항 공사를 수주하면서 국방부 인사들에게 접근하기 위해 동원한 인물로, 나름대로 국방부에 인맥을 구축해 놓고 있었다. 이 회장은 "협조하면 군인공제회 발주공사를 하도급 주겠다"는 김 상무보의 말을 듣고 자신의 돈까지 써가며 로비를 했지만 하도급은커녕 로비 자금도 돌려받지 못한 상태였다. 강 경위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 회장의 자백을 받은 강 경위는 김 상무보의 신병 확보를 위해 사전영장을 발부받은 뒤 그를 서소문 서울시청 별관에서 만났다. 강 경위가 "조사할 게 있어 같이 가달라"고 하자 김 상무보는 체념한 듯 "알았다"면서도 "잠시 시간을 달라"고 말한 뒤 근처에 있던 부하 직원에게 다가가 몸을 돌려 양복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건넸다. 강 경위는 순간적인 직감에 김 상무보의 팔을 낚아 챘다. 압수한 물건은 뇌물 내역과 날짜가 빼곡하게 적힌 수첩이었다. 수첩에는 'X장군'식으로 적힌 장군들의 이름과 '1,000' '2,000'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김 상무보가 장군들에게 건넨 뇌물 액수였다.
이후 수사는 일사천리였다. 뇌물을 받은 예비역 장군 3명은 순순히 혐의 사실을 시인했다. 강 경위는 "군인은 목숨보다 명예를 소중히 여긴다고 알고 있었는데 다소 실망스러웠다"고 말했다. 1986년 순경으로 경찰에 투신해 1년 남짓 특수수사과에서 근무하고 있는 미혼의 강 경위는 "이번 사건은 시작이다. 더 큰 첩보도 있다"며 의욕을 나타냈다.
/김정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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