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노 교코 지음·김성기 옮김 사이언스북스 발행·1만2,000원곤충을 사랑한 여인, 마리아 지뷜라 메리안(1647∼1717). 그는 최초의 여성 곤충학자이자 박물학자, 천재적인 동판화가로 독일의 500마르크 지폐와 40페니히 우표에도 초상화가 실려 있다. 하지만 그가 그림 형제나 가우스, 클라라 슈만 등 독일의 쟁쟁한 인물들과 함께 영예로운 자리에 오른 것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200년 가까이 그는 곤충학자로도, 화가로도 '잊혀진 위인'이었다.
일본의 독일문학가인 나카노 교코(中野京子)가 펴낸 '나는 꽃과 나비를 그린다'에서는 치열한 예술혼으로 불꽃 같은 삶을 살았던 메리안을 만날 수 있다. 여성 차별과 마녀사냥이 횡행하던 시절, 개인적으로도 불우한 환경과 잇단 역경을 딛고 우뚝 설 때까지의 인생역정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
그는 독일의 동판화 제작자이며 출판업자인 마테우스 메리안과 그의 후처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죽은 후 이복 형제들의 냉대 속에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쫓겨난 그는 18세에 결혼을 하지만 남편은 술주정뱅이에 난봉꾼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능은 그 누구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곤충의 신비로운 생태에 빠져들었고, 이를 그림으로 그렸다. 구더기가 생겨나는 모습을 관찰하기 위해 들쥐 사체를 거실에 두고 며칠씩 돋보기로 들여다보기도 했다. 1675년에 채색동판화집 '꽃 그림책'에 이어 1679년에는 '애벌레의 경이로운 변태와 그 특별한 식탁'을 펴냈다. 한 장의 그림에 곤충 알이 애벌레, 번데기, 성충으로 변하는 과정과 짧은 해설을 곁들인 이 화집은 최초의 곤충도감이다. 특히 곤충의 변태는 곤충이 썩은 유기물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발생설'을 뒤엎은 것이었다.
그의 곤충 동판화는 남미 수리남에서 2년여의 연구와 관찰을 거친 후 활짝 꽃핀다. 말라리아에 걸려 죽음의 문턱을 오가며 스케치한 내용들은 완벽한 도감이자 예술로 태어났다. 대담한 구도와 절묘한 배색, 그리고 초현실적인 화풍으로 그린 60여 점의 곤충 그림은 탁상공론에 머물던 곤충학계는 물론, 화단에도 엄청난 충격을 던졌다. 이러한 그림들은 당시 '보고 싶고, 알고 싶고, 갖고 싶다'는 바로크 시대의 분위기와 맞물려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러시아의 피요트르 대제는 메리안의 그림을 렘브란트의 그림과 나란히 궁정에 걸어 두었다. 괴테는 그의 작품에 대해 "감각적인 즐거움과 지적인 쾌감을 완벽하게 만족시켜 준다"고 평했다.
메리안의 동판화는 그의 사후 100년간 19쇄가 발행됐으나 18세기 후반 등장한 근대 곤충학이나 회화사에서 버림받게 된다. 학자들은 메리안이 뱀을 곤충으로 보는 등 분류 과정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며 공격했고, 동판화를 유화보다 낮게 보는 미술사가들도 메리안을 회화사의 계보에서 빼버렸다. 저자는 그가 오랫동안 '복권'되지 못한 배경에 대해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여자이기 때문 아닐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역사적 평가는 언젠가는 이뤄진다"고 결론지었다. 특히 그의 업적은 과학과 예술을 결합한 '사이언스 아트'(Science Art)라는 점에서 귀감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컬러 화보가 많지 않아 아쉽지만 낯선 곤충세계의 이야기와 함께 메리안이 살았던 17세기 여성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어 여러 모로 흥미롭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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