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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美투자협정 싸고 "스크린쿼터" 논란 재연 / 영화계 "문화의 다양성 위해 사수" 경제계 "개방 늦추면 경제 고립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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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美투자협정 싸고 "스크린쿼터" 논란 재연 / 영화계 "문화의 다양성 위해 사수" 경제계 "개방 늦추면 경제 고립뿐"

입력
2003.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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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쿼터 축소 문제가 한·미 투자협정(BIT)의 최대 걸림돌로 떠오르면서 BIT의 실익을 둘러싼 논쟁도 뜨거워지고 있다.스크린쿼터 문제는 정부가 4월초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시장 개방 1차 양허안에서 시청각 부문을 제외함으로써 미래의 과제로 넘어가는 듯 했다. 하지만 경기침체의 장기화로 외국인 투자유치가 더욱 절실해지면서 경제부처와 재계에서는 한·미 BIT의 조속한 타결을 위해 스크린쿼터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재계의 건의를 받아들여 청와대 정책실에서 경제부처와 문화계의 입장을 조정하도록 지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청와대가 13일부터 본격적인 중재에 나서기로 했지만, 시각차가 커 입장 정리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청와대 정책실은 1998∼99년 스크린쿼터 사수운동에 앞장섰던 인물들이 바로 영화감독 출신인 이창동 문화부 장관과 스크린쿼터 문화연대 이사장을 지낸 영화배우 문성근씨 등 노 대통령의 측근들이어서 더욱 난감해 하고 있다.

당장 40억 달러 투자유치 효과

경제부처와 재계는 '동북아 경제중심' 전략의 성공을 위해 시장개방을 더 이상 미뤄놓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한·미 BIT의 경우 당장 40억 달러의 투자유치 효과와 함께 미군 몇 개 사단이 주둔하는 정도의 안보효과가 있다고 설명한다. '문화산업 보호'라는 취지는 인정하지만 더 큰 국익을 위해 일정한 선에서 절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권태신 재경부 국제업무정책관은 "전세계적으로 영화수입을 제한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으며, 연간 국산영화 상영일수가 평균 147일이나 되는 상황에서 146일로 묶여 있는 스크린쿼터는 이제 별 의미가 없다"면서 "문화부와 영화업계도 2000년 5월 국산영화 점유율이 40%를 넘으면 스크린쿼터를 양보하겠다고 공언하지 않았느냐"고 지적했다. 권 정책관은 또 "새 정부 출범 후 해외 투자자들 사이에서 한·미 관계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된 것이 사실"이라며 "양국이 BIT를 통해 공조를 강화하면 최대 불안 요소인 북핵 문제와 전쟁위협 역시 누그러질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도 "일부 업종이 손해를 본다고 해서 협정 체결을 늦출 경우 그 결과는 한국경제의 고립 뿐"이라며 "외자유치를 하자면서 개방을 회피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BIT는 외국기업에 대해 세제 등에서 내국인 기업과 동등 대우를 해주기 때문에 인텔의 반도체연구소 등 다국적 기업의 투자유치에 절대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학계 일부에서는 이미 개방형 경제구조가 정착된 미국에 비해 한국시장이 훨씬 폐쇄적이어서 우리쪽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다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한·미 BIT는 문화주권의 포기

영화계는 자신들의 투쟁이 단순히 스크린쿼터를 유지하는 차원이 아니라 한·미 BIT의 허구성을 폭로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양기환 스크린쿼터 문화연대 사무처장은 "스크린쿼터는 코끼리(한·미 BIT)의 발바닥에 불과한 문제"라며 "문화적 '종(種)의 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운동으로 봐 달라"고 말했다.

주무부서인 문화부가 철석같이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를 정책으로 삼고 있어 축소 논의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만큼, 문화주권을 지키는 차원에서 BIT 체결 자체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부처와 재계가 스크린쿼터 유지를 '영화계의 밥그릇 지키기'로 보는 시각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올들어 5월말까지 국산영화 시장점유율이 46.2%(서울관객 기준)에 달하는 등 성장세가 계속되고는 있지만, 관객 점유율과 한국 영화산업의 자생력과는 같은 차원의 문제로 볼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광모 감독은 "스크린쿼터가 축소될 경우 상업성이 강한 영화만 살아 남는다"며 "한국 영화는 수익률이 떨어지고 산업기반이 약해 아직은 보호막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영화계 일부에서 "이제 스크린쿼터라는 '안전판' 없이도 한국 영화가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 아니냐"는 주장도 고개를 들고 있다. 조희문 상명대 영화학과 교수는 "BIT가 체결되면 한국 영화시장이 무너진다는 논리는 80년대 말 '직배 영화가 들어오면 한국 영화 망한다'던 주장처럼 민족정서에는 부합하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진 논리"라고 주장했다.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박은주기자 jupe@hk.co.kr

■ 한·미 투자협정(BIT)

BIT(Bilateral Investment Treaty)는 양국 투자자들이 상대국 국민과 똑같은 조건으로 투자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협정으로, 국제시장에선 국가간 경제협력의 긴밀도를 나타내는 척도로 간주된다. 한·미 BIT는 98년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미국측에 먼저 제의해 협상이 시작됐으나, 스크린쿼터에 발이 묶여 99년 5월 이후 답보 상태를 유지해 왔다. 미국측은 국산영화 의무상영일수를 연간 146일에서 73일로 축소하지 않는 한 BIT 체결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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