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본 법정 광경이다. 젊은 판사가 침착한 얼굴로 증인으로 나온 할머니를 응시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판사가 묻는 질문에는 관심조차 없는 듯 모른체 하면서 자기 말 만 늘어놓았다. 할머니와 함께 온 듯한 방청석의 사람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집단이기주의는 법정을 무시할 정도까지 위험수위에 다다르고 있었다." 너 말여, 다신 날 부르지 마. 알았지?"
증인으로 나온 할머니는 판사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반말로 소리쳤다. 늙고 무식한 척 하면서도 핵심은 피해가는 영악함이 들여다보였다. 나는 젊은 판사가 오만한 그들에게 감치명령이라도 내렸으면 했다. 아무리 젊어도 재판장은 사법권을 운용하는 국가다. 최대의 존경을 표시해야 하는 것도, 그에게 권한을 준 것도 바로 그 같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내가 더욱 놀라워 했던 것은 다음 순간이었다. 젊은 판사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의 목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기다렸다. 나이에 걸맞지 않는 무서운 자제력이었다.
"할머니, 제가 다시는 귀찮게 오시라고 하지 않을께요. 대신 오늘 하나만 확실하게 대답해 주세요. 알았죠?"
판사는 증인 할머니를 달래며 재판의 핵심을 단번에 정리했다. 힘 보다 인격과 미소로 법정을 지휘하는 그의 능력에 난 혀를 내둘렀다. 한 판사가 변호사를 감치한 일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힘으로 보나, 이해관계로 보나 법원 눈치에 민감한 재야 법조계의 구조상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칼날은 피를 보고 싶어하는 본성이 있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그런 본성을 자제하고 절제하는 정도는 또 다른 인격이다. 변호사 감치는 담당 판사의 개인적인 자질 문제라고 생각한다. 보다 큰 문제는 서로를 증오하는 분위기가 집단 간에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국 법원공무원노조 준비위원회에서 전국 법원의 변호사 대기실을 폐쇄하겠다고 밝힌 보도를 접했다. 명분 뒤에는 깊은 이유도 모르면서, 또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미워서 가담하는 사람도 많다. 그렇게 퍼지고 있는 '꼬드김'들을 막을 수 있는 '미소'들이 흔하지 않은 현실이 안타깝다.
엄 상 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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